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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 잔다르크와 백년전쟁, 민족의식을 일깨운 소녀 전사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100년 전쟁 속에서 나타난 기적 같은 존재백년전쟁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서 벌어진 복잡한 전쟁으로, 단순한 왕위 계승 분쟁을 넘어서서 중세 유럽의 정치 질서, 사회 구조, 민족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오랜 전쟁의 중후반부, 프랑스의 패색이 짙던 시점에 잔다르크라는 이름 없는 농부 소녀가 등장하면서 전쟁의 흐름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잔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확신 아래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고, 샤를 7세를 프랑스의 합법적인 왕으로 대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시기 프랑스는 군사력뿐 아니라 국민적 사기에서도 극도로 불리했지만, 잔다르크의 등장은 마치 기적처럼 받아들여졌고, 그녀의 신념과 용기는 병사들과 시민 모두에게 강력한 정.. 2025. 10. 28.
전쟁사 - 함부르크 공습, 불바다가 된 도시와 민간인의 비극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이 택한 전략폭격의 새로운 전환점1943년 여름, 연합군은 독일의 주요 산업 도시 함부르크를 대상으로 '고모라 작전(Operation Gomorrah)'이라 명명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이는 전쟁사에서 민간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도시 공습 중 하나로, 단순한 군사적 파괴를 넘어 독일 국민의 사기를 꺾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당시 영국 공군(RAF)과 미군 8공군은 협업 체제를 통해 야간과 주간 공습을 교차적으로 수행하였으며, 함부르크는 산업시설뿐 아니라 주거지역 전체가 타겟이 되었다. 이 공습은 단순히 폭탄 투하의 양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신형 전파 교란 장비인 ‘윈도우(Window)’ 기술이 도입된 첫 사례로, 독일군의 방공망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2025. 10. 28.
전쟁사 - 삼국지의 적벽대전, 불과 바람이 만든 전략적 승리 군사적 열세 속에서 위나라에 맞선 오·유 연합의 절박한 선택적벽대전은 중국 후한 말기의 군웅 할거 시기, 조조가 남하하여 장강 유역을 장악하려 하자 손권과 유비가 연합하여 맞서 싸운 전투로, 기원후 208년에 벌어졌다. 당시 조조는 북방의 원소를 정벌한 직후 80만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진격하였고, 유비는 이미 조조에게 패해 남쪽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손권 역시 조조의 압박에 직면하며 항복과 항전에 대한 양면적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유비와의 연합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군사 동맹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손권과 유비는 각각 장강 하류와 상류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만약 조조에게 이 지역을 빼앗길 경우 중국 대륙 전체의 판도가 조조에게 기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2025. 10. 26.
전쟁사 - 이오지마 전투, 국기 게양 이면의 피로 물든 섬 태평양 전쟁의 후반부, 미군의 전략적 선택지로서의 이오지마이오지마 전투는 1945년 2월 19일부터 3월 26일까지 약 36일간 이어졌으며, 태평양 전쟁 후반부에 벌어진 가장 치열하고 상징적인 전투 중 하나였다. 이오지마는 일본 도쿄 남쪽 약 1,20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작은 화산섬으로, 당시 일본 본토 방공망의 일환으로 기능하고 있었으며, 전략 폭격기의 발진 및 귀환 거점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였다. 특히 미군은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의 일본 본토 공습 작전 수행 중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나 연료 부족 상황에서 이오지마를 응급 착륙지로 활용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일본 또한 이러한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었기에, 해당 섬에 약 21,000여 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수천 개의 방공.. 2025. 10. 25.
전쟁사 - 오키나와 전투, 태평양 전쟁 최후의 결전이자 참혹한 민간인 피해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를 장식한 오키나와 전투의 전략적 배경1945년 4월부터 6월까지 약 82일 동안 이어진 오키나와 전투는 태평양 전쟁의 마지막 대규모 지상전으로 기록되며, 일본 본토를 침공하기 전 미국이 수행한 결정적인 작전이었다. 오키나와는 일본 규슈 남쪽에 위치한 류큐 열도의 중심 섬으로, 일본 본토로 진입하는 데 있어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었다. 미국은 일본의 저항이 극심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전쟁의 종결을 앞당기고 소련의 참전을 견제하기 위해 이 섬을 반드시 점령할 필요가 있었다. 반면 일본은 본토 방어를 위해 오키나와를 ‘결전의 섬’으로 삼고, 민간인을 포함한 총력전을 준비하였다. 이로 인해 오키나와는 군인뿐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비극의 .. 2025. 10. 25.
전쟁사 - 참호전의 공포, 제1차 세계대전 서부 전선의 실상 서부 전선의 형성과 유럽 전쟁 양상의 고착화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은 ‘슐리펜 계획’을 기반으로 프랑스를 빠르게 제압한 뒤 동쪽에서 러시아를 상대하려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이를 위해 독일군은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하며 서부 전선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는 영국의 참전 명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예상보다 강력한 저항, 마른 전투에서의 반격, 보급선의 과부하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독일의 기동 작전은 실패하였고, 전선은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을 따라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양측은 움직임을 멈추고 땅속으로 숨어들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유럽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투 양식 중 하나인 ‘참호전’이 등장하게 된다. 참호는 단순한 도랑이 아닌 수많은 방어선과 철조망,.. 2025.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