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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 백년전쟁과 잔 다르크, 중세 유럽을 뒤흔든 민족의식의 부상 영국과 프랑스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시작된 백년전쟁14세기 중엽,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두 왕국으로 성장하며 상호간 정치·경제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그 갈등의 핵심에는 프랑스 왕위 계승권과 플랑드르 지방의 통제권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1328년, 프랑스의 샤를 4세가 후계 없이 사망하자 그의 외조카였던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며 전쟁의 서막을 연다. 하지만 프랑스 귀족들은 살리카 법에 따라 여성 혈통을 통한 왕위 계승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오른다. 이 왕위 계승 분쟁은 곧 플랑드르의 상업적 이권, 노르망디·가스코뉴 지역의 영토 문제와 결합되며 장기적인 전쟁으로 비화하게 된다. 이후 1337년에 공식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며, .. 2025. 10. 14.
전쟁사 - 오사 전쟁과 덴마크 패권의 몰락, 북유럽 정세의 대전환 덴마크 중심의 칼마르 동맹과 스웨덴의 반발로부터 비롯된 갈등14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까지 북유럽의 정세는 ‘칼마르 동맹’이라는 정치 연합에 의해 유지되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세 왕국은 명목상 하나의 군주 아래 통합되어 있었으나, 실질적인 주도권은 덴마크가 쥐고 있었다. 이로 인해 스웨덴 귀족들과 상인들 사이에서 덴마크의 과도한 개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고, 16세기 초 스웨덴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갈등은 스웨덴 귀족이었던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가 반란을 일으키며 폭발했고, 그는 1523년 스웨덴 왕으로 즉위하며 동맹을 탈퇴했다. 이후 약 한 세기 동안 덴마크와 스웨덴은 수차례 전쟁을 반복했고, 그중 가장 결정적인 충돌이 바로 1657년부터 1660.. 2025. 10. 14.
전쟁사 - 임진왜란의 발발과 조선 수군의 기적적 반격 임진왜란의 시작과 조선의 허를 찌른 왜군의 기습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직후, 조선을 침략하여 명나라로 진출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이는 단순한 국지전이 아닌 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벌어진 국제전으로, 조선에게는 국가 존망의 위기를 불러온 전쟁이었다. 조선은 당시 일본의 침략 가능성에 대해 일부 인지하고 있었으나, 실제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방심하고 있었고, 중앙정부의 내정 혼란과 군제의 붕괴, 무기 체계의 낙후 등으로 인해 초기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왜군은 부산포를 기점으로 빠르게 북상하며 불과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였고, 조선 조정은 파천을 결정하며 임금이 의주까지 피신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 전격전은 조선 백성의 불안과 공포를 가중시켰고, .. 2025. 10. 14.
전쟁사 - 백제 멸망의 원인과 나당연합의 결정적 승리 삼국의 균형을 깨뜨린 백제의 오판과 나당연합의 성립7세기 중반, 한반도의 삼국은 오랜 갈등과 불안정한 동맹 관계 속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백제는 한강 유역과 호남을 중심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고, 고구려는 만주와 평양 일대에서 강대한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었으며, 신라는 상대적으로 협소한 영토를 지니고 있었으나 꾸준한 정치적 안정과 외교 전략으로 세를 키우고 있었다. 이 와중에 백제는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함으로써 삼국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실수를 범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신라는 당나라와 외교적으로 접촉하였고, 고구려의 강경책에 부담을 느낀 당은 신라와의 연합에 동의하게 된다. 이른바 나당연합은 단순한 동맹을 넘어,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좌우할 중대한 연합전선으로 발전하며, 백제에 대해 전.. 2025. 10. 14.
전쟁사 - 아편전쟁과 청나라의 몰락: 제국주의의 포문이 열리다 무역 불균형과 은의 유출이 불러온 아편 유입19세기 초, 중국 청나라는 유럽과의 무역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서구 상인들은 도자기, 차, 비단 등을 대량으로 수입했지만, 청나라는 서구의 물건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무역 불균형은 은의 대량 유출을 초래했고, 특히 영국은 자국의 은 보유량이 급감하자 이 흐름을 막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 해답으로 떠오른 것이 인도산 아편이었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에서 대량 생산한 아편을 밀수 형태로 중국에 유입시켜, 은과의 교환을 통해 무역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아편은 순식간에 중국 전역에 퍼지며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했고, 중독과 범죄의 증가, 노동력 감소 등으로 청나라는 심각한 내적 위기를 맞이한다. 이에 대응하여 1.. 2025. 10. 11.
전쟁사 - 템플러 기사단의 멸망과 프랑스 왕권 강화 성전의 영웅에서 권력의 위협으로 전락한 기사단의 운명중세 유럽의 십자군 전쟁은 단지 종교적 열정만이 아닌, 권력과 금권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심에 있었던 템플러 기사단은 원래 성지를 수호하고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기독교 군사 조직으로 시작되었지만, 200여 년의 세월 동안 이들은 유럽 전역에 막대한 부동산과 금융망을 확보한 초국가적 세력이 되었다. 템플러는 십자군 전쟁에서 전투력뿐 아니라 고리대금과 금융 대출 기능을 수행하며, 당시 국왕과 귀족조차도 그들의 금융 시스템에 의존할 정도였다. 특히 프랑스 국왕 필립 4세는 전쟁과 사치로 인한 국고의 빈곤을 템플러를 통한 대출로 메꾸고 있었고, 그 의존도는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필립 4세는 점차 이 거대한 군사·금융 조직을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2025.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