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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 나치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과 동부 전선의 격돌 히틀러의 무모한 계획, 바르바로사 작전의 개시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은 소련과 맺은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기습적으로 소련을 침공하였다. 이 작전은 ‘바르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이라 명명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큰 규모의 군사 작전으로 기록된다. 히틀러는 소련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무려 300만 명이 넘는 병력과 수천 대의 전차, 항공기를 동원하여 동부 전선을 형성하였다. 나치 독일은 북부 집단군이 레닌그라드, 중부 집단군이 모스크바, 남부 집단군이 우크라이나와 키예프를 목표로 진격하는 삼지창 전술을 채택하였다. 초기에는 기습 효과가 극대화되어 소련군은 큰 혼란에 빠졌고, 독일군은 빠른 속도로 소련의 깊숙한 내륙까지 진출했다. 이.. 2025. 10. 18.
전쟁사 -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 전쟁의 전면 발발 미일 간의 긴장과 일본 제국의 선제 공격 배경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 해군은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미국 태평양 함대를 기습적으로 공격하였다. 이 공격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세계사적으로도 큰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당시 일본은 중국 대륙 침략과 동남아시아 확장 정책을 추진하며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의 경제 제재에 직면하고 있었다. 특히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는 일본 경제와 군사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고, 이에 따라 일본은 대담한 선제 공격으로 태평양 지역의 제해권을 확보하려 하였다.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 6척을 동원하여 350여 대의 항공기를 진주만으로 보냈고, 미국의 전함, 순양함, 구축함 등 다수의 함정과 항공기, 시설물에 큰 타격을 .. 2025. 10. 18.
전쟁사 - 100년 전쟁의 시작과 아쟁쿠르 전투의 결정적 전환 영국과 프랑스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점화된 유럽 최장기 전쟁14세기 중반, 유럽은 두 강대국 간의 치열한 분쟁으로 인해 오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바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100년 전쟁’이다. 이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프랑스 왕위 계승을 둘러싼 근본적인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의 발루아 왕가가 왕위를 계승하자,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이 모계로 프랑스 왕위를 계승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에 걸쳐 양국은 군사적 충돌을 반복했고, 그 중심에는 다양한 전투와 정치적 변화가 얽혀 있었다. 초기에는 영국이 장궁(longbow)을 활용한 전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프랑스를 압도했으나, 후반에는 프랑.. 2025. 10. 18.
전쟁사 - 한니발 전쟁과 로마의 반격,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전개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카르타고와 로마의 필연적 충돌기원전 3세기 지중해 세계는 로마와 카르타고라는 두 강대국이 양분하고 있었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지배한 신흥 세력이었고,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해상무역을 중심으로 서부 지중해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해상 제국이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며 시칠리아를 차지하고 카르타고에 큰 전쟁배상금을 부과하면서 양국의 대립은 격화되었다. 이에 대한 보복과 명예 회복을 위해 카르타고는 이베리아 반도 정복을 통해 새롭게 세력을 확장하였고, 그 중심에는 명장 한니발 바르카가 있었다. 한니발은 카르타고가 로마에 당한 굴욕을 씻고, 다시 지중해 패권을 회복하기 위해 전면전을 준비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와 카르타고.. 2025. 10. 18.
전쟁사 - 병자호란과 조선의 굴욕, 삼전도의 치욕을 넘어서 명청 교체기의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이 직면한 생존의 갈림길17세기 동아시아는 거대한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 있었다. 명나라의 쇠퇴와 청나라의 급부상이라는 흐름 속에서, 중화 질서를 신봉하던 조선은 명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해 변화하는 국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이미 임진왜란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인 조선은 북방에서 급격히 성장하는 후금, 후일의 청나라와 외교적 갈등을 겪게 된다. 1627년 정묘호란은 그 신호탄이었다. 당시 후금은 형제 국가 수준의 화친을 원했지만, 조선은 이를 모호하게 받아들였다. 이후 후금은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명을 압박하면서 조선에게도 명과의 단절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선은 여전히 명에 대한 의리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는 청의 침공을 초래하게 된다. 1636년, 청 .. 2025. 10. 18.
전쟁사 - 잉글랜드 장미전쟁, 왕위 계승을 둘러싼 핏빛 내전 요크가와 랭커스터가의 왕위 쟁탈전으로 벌어진 내전의 서막15세기 중반, 영국은 백년전쟁의 여파와 잇따른 왕위 약화로 인해 정치적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헨리 6세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국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자, 왕위를 정통성 있게 계승하길 바랐던 요크가(Richard of York)가 중심이 되어 랭커스터가에 대항하였다. 이 두 가문은 모두 플랜태저넷 왕가의 일원으로,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었기에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455년에 시작된 이 내전은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이라 불리는데, 요크가의 상징이 하얀 장미, 랭커스터가의 상징이 붉은 장미였던 데서 유래한다. 이 전쟁은 단순한 왕위 다툼을 넘어, 귀족 간의 세력 균형, 지방 호족들의 충성 갈등, 그리.. 2025.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