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23 전쟁사 - 보스워스 전투와 튜더 왕조의 시작 장미 전쟁의 종식과 권력의 분수령이 된 보스워스영국 중세 말기의 권력 투쟁을 대표하는 사건 중 하나가 바로 보스워스 전투다. 이 전투는 1455년부터 1487년까지 이어진 장미 전쟁의 사실상 마지막 전투였으며, 백장미를 상징으로 삼은 요크 가문과 붉은 장미를 상징으로 삼은 랭커스터 가문 간의 치열한 왕위 계승 전쟁을 종결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왕위에 있던 요크파의 리처드 3세는 형 에드워드 4세의 동생으로, 조카인 에드워드 5세를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었다. 반면 헨리 튜더는 랭커스터 가문과 혈연적으로는 멀었지만 정치적 지지를 바탕으로 왕위에 도전했다. 특히 프랑스와 브리튼, 웨일즈 등지의 귀족 세력들이 그의 후원자로 가세하면서 헨리 튜더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였다. 1485년 8월 .. 2025. 11. 22. 전쟁사 - 태평양 전쟁의 발발과 미일 충돌의 서막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미국과의 대립 격화태평양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광범위한 해상 전쟁으로, 그 기원은 일본 제국의 확장주의에 있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1937년 중일전쟁을 본격화하며 아시아 대륙에서의 세력 확장을 꾀했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서방 열강은 일본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했고, 특히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와 철강 수출을 중단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는 자원 의존도가 높았던 일본에게 치명적인 타격이었으며, 일본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지로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제도에 대한 무력 점령을 계획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과의 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일본은 선제타격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일본 군부는 미국이 전면전에 나서기 전.. 2025. 11. 22. 전쟁사 - 걸프 전쟁과 현대전의 시작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국제사회의 대응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기습적으로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걸프 전쟁의 불씨를 지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가 석유 생산량을 과도하게 늘려 석유 가격을 하락시키고, 이는 이라크의 경제 회복을 저해한다고 주장하며 무력 침공의 명분을 세웠다. 실제로 이라크는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부채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쿠웨이트를 자국의 19번째 주로 병합함으로써 석유 자원을 확보하고 중동 지역에서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국제 사회는 강력한 대응에 나섰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결성되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에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를 무시하고 점령을 지속했으며, 전쟁은 .. 2025. 11. 22. 전쟁사 - 베트남 전쟁의 발발과 냉전 속 미국의 개입 식민 해방에서 분단으로 이어진 베트남의 비극베트남 전쟁은 20세기 중반 냉전 체제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한반도에 이어 또 다른 아시아 국가에 드리운 그림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난 베트남은 민족 해방의 기쁨을 맛보기 무섭게 분단이라는 또 다른 고통에 직면했다.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위 17도선을 기준으로 북베트남은 공산주의 호치민의 지도 아래, 남베트남은 반공 정부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고 이는 냉전 구도에서 소련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 각각 개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북베트남은 통일을 목표로 무장 게릴라 세력인 베트콩을 통해 남부 지역에 대한 무력 침투를 확대했고, 남베트남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을 절실히 요청했다. 이처럼 베트남은 자국 내 정치 체제의 대립을 넘.. 2025. 11. 21. 전쟁사 - 인도-파키스탄 전쟁과 카슈미르 분쟁의 역사적 배경 분할 독립의 상처에서 시작된 영토 갈등1947년 영국령 인도의 분할 독립은 아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격렬한 인종·종교적 분쟁을 초래한 사건 중 하나였다. 힌두교 중심의 인도와 이슬람 중심의 파키스탄은 종교를 기준으로 국경을 획정하면서도 여러 지역에서 모호한 경계선을 남겼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히말라야 남쪽의 카슈미르 지역이었다. 당시 카슈미르 왕국은 힌두교를 믿는 마하라자가 통치하고 있었지만 인구 다수는 무슬림이었고, 이에 따라 파키스탄은 해당 지역이 자신들의 영토로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하라자는 인도에 합병을 요청했고, 인도는 이를 수용하면서 병력을 파견하였다. 이로 인해 1947년 첫 번째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하였고, 이는 이후에도 1965년, 1971년, 1999년.. 2025. 11. 20. 전쟁사 - 크림 전쟁과 근대 전쟁의 서막 유럽 열강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크림반도19세기 중반의 크림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간의 종교적 분쟁에서 촉발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럽 열강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국제전이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흑해를 거쳐 지중해로 진출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오스만 제국의 쇠퇴를 기회 삼아 남하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성지 예루살렘의 그리스 정교와 가톨릭의 성지 관리권 분쟁은 러시아와 프랑스 사이의 외교 마찰을 야기했고, 이는 결국 오스만 제국과의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팽창을 유럽의 세력 균형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오스만 제국 편에 서서 참전하였다. 이로 인해 크림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왕국, 오스만 .. 2025. 11. 20. 이전 1 ··· 27 28 29 30 31 32 33 ··· 5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