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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 트라팔가 해전: 넬슨 제독과 영국 해군의 절대적 승리 나폴레옹 전쟁과 해상 패권을 둘러싼 충돌의 배경트라팔가 해전은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부의 트라팔가 곶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전투로, 나폴레옹 전쟁 중 해상 패권을 결정지은 결정적인 충돌이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당시 유럽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었지만, 영국을 침공하기 위해서는 도버 해협을 건너야 했고, 이를 위해 반드시 해군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스페인과 동맹을 맺고 양국의 함대를 연합시켜 영국 해군을 격파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이 연합 함대는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 대서양으로 나간 후, 영국 해역으로 북상할 계획이었다. 이에 맞서 영국 해군은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지휘 아래 강력한 전열을 구축하고 있었다. 넬슨은 탁월한 전술가이자 지휘관으로서 이미 나일 해.. 2025. 11. 26.
전쟁사 - 살라미스 해전: 바다 위에서 운명이 갈린 동서 문명의 격돌 페르시아의 복수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마지막 연합의 시도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1세는 아버지 다리우스 1세가 실패한 그리스 정복을 이어받기 위해 대규모 원정을 준비한다. 그는 수십만의 병력과 수백 척에 달하는 해군 함대를 이끌고 헬레스폰트를 건너 테르모필레 전투를 거쳐 아테네를 점령하며 거침없는 진격을 이어간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은 도시를 비우고 살라미스로 대피한 상태였고, 아테네 해군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지휘 아래 바다에서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은 살라미스 해협에서 최후의 저항을 감행하기로 결정한다. 살라미스는 좁은 수로와 복잡한 해안선을 지닌 전략적 요충지로, 대형 페르시아 함대에게 불리한 지형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점을 활용해 페르시.. 2025. 11. 25.
전쟁사 - 마라톤 전투: 페르시아와 아테네의 격돌이 남긴 전설 그리스 세계를 위협한 페르시아 제국의 팽창과 마라톤으로 향한 긴장기원전 5세기 초,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은 아시아와 중동 대부분을 정복하며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야욕은 그리스 본토로까지 확장되었고, 특히 아테네와 에레트리아가 이오니아 반란을 지원하며 페르시아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본보기로 보복을 결심했고, 결국 대규모 원정군이 에게해를 넘어 아테네를 향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 군은 아테네 북동쪽 평야인 마라톤에 상륙하게 되며 전설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당시 아테네는 약 1만 명의 병력으로 2~3만 명에 이르는 페르시아군을 상대해야 했고, 이는 수적 열세와 병참의 압박 속에서 시민 전체가 .. 2025. 11. 25.
전쟁사 - 크림 전쟁과 근대 전쟁의 서막: 열강의 이해관계가 낳은 대규모 충돌 러시아 제국의 남하 정책과 오스만 제국의 쇠퇴 속 충돌의 서막이 열리다크림 전쟁은 1853년부터 1856년까지 벌어진 국제전으로,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의 갈등에서 시작되어 곧이어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왕국이 오스만 측에 가세하며 본격적인 열강 간의 충돌로 확대되었다. 전쟁의 발단은 겉으로는 성지 예루살렘에서의 정교회와 가톨릭 간의 성지 관리권 다툼이었지만, 실제로는 유럽 열강 간의 세력 균형과 러시아의 흑해 진출 야욕, 오스만 제국의 급격한 쇠퇴에 따른 권력 공백이 맞물린 지정학적 대결이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쇠퇴를 기회로 삼아 흑해를 넘어 지중해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으며, 이는 영국과 프랑스의 통상 및 식민지 루트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영국은 인도.. 2025. 11. 25.
전쟁사 - 잔 다르크와 백년전쟁: 민족의 여명기를 연 성녀의 전장 영국과 프랑스의 왕위 계승 분쟁에서 시작된 100년 전쟁의 배경백년전쟁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에 걸쳐 간헐적으로 벌어진 전쟁으로, 단순히 프랑스와 영국 간의 영토 분쟁에 그치지 않고 중세 봉건질서의 붕괴와 민족국가 형성이라는 역사적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이 전쟁은 영국 왕이었던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는 프랑스의 마지막 카페 왕조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발생한 공백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모계 혈통을 근거로 프랑스 왕위를 주장했지만, 프랑스 귀족들은 살리카법을 내세워 여성 혈통을 배제하고 발루아 가문의 필립 6세를 왕으로 선출했다. 이에 불복한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면전에 돌입했고, 이후 양국은 플랑드르, 노르망디, 아.. 2025. 11. 25.
전쟁사 - 나폴레옹 전쟁과 프러시아의 반격: 해방 전쟁의 서막 나폴레옹의 유럽 제패와 그에 대한 독일 연방 국가들의 반응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면서 시작된 나폴레옹 전쟁은 단순한 프랑스의 확장 전쟁을 넘어 유럽 전역의 권력 균형을 뒤흔드는 거대한 변동의 시기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한 정국을 통합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영국 등 유럽의 전통 강국들과 연달아 전쟁을 벌이며 자신의 세력을 급속도로 확장해 나갔다. 특히 제4차 대프랑스 동맹전(1806)에서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을 무너뜨리고 베를린에 입성하면서 독일 지역을 프랑스의 직접 영향권 아래에 두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었고, 나폴레옹의 주도로 ‘라인 동맹(Confederation of the Rhin.. 2025.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