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전쟁의 종식과 권력의 분수령이 된 보스워스
영국 중세 말기의 권력 투쟁을 대표하는 사건 중 하나가 바로 보스워스 전투다. 이 전투는 1455년부터 1487년까지 이어진 장미 전쟁의 사실상 마지막 전투였으며, 백장미를 상징으로 삼은 요크 가문과 붉은 장미를 상징으로 삼은 랭커스터 가문 간의 치열한 왕위 계승 전쟁을 종결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왕위에 있던 요크파의 리처드 3세는 형 에드워드 4세의 동생으로, 조카인 에드워드 5세를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었다. 반면 헨리 튜더는 랭커스터 가문과 혈연적으로는 멀었지만 정치적 지지를 바탕으로 왕위에 도전했다. 특히 프랑스와 브리튼, 웨일즈 등지의 귀족 세력들이 그의 후원자로 가세하면서 헨리 튜더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였다. 1485년 8월 22일, 보스워스 평원에서 두 군대는 격돌했으며, 이 전투는 단순한 병력의 싸움이 아닌 정치적 배신과 충성, 그리고 권력 계산이 얽힌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특히 리처드 3세의 주요 지휘관 중 하나였던 스탠리 가문이 전투 중 헨리 튜더 측에 가담함으로써 전세가 급변했고, 결국 리처드는 전사하게 된다. 그의 죽음은 영국 역사상 마지막으로 전투 중 사망한 국왕이라는 상징성을 가지며, 튜더 왕조의 출범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헨리 7세의 즉위와 중앙 집권의 토대 형성
보스워스 전투의 승리로 왕위에 오른 헨리 튜더는 헨리 7세로 즉위하면서 영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곧바로 요크파와의 화해를 모색하기 위해 리처드 3세의 조카딸이자 요크 가문의 유일한 적통인 엘리자베스 요크와 결혼함으로써 랭커스터와 요크를 통합하는 상징적 결합을 이뤄냈다. 이 결혼은 튜더 왕가의 문장에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결합한 '튜더 로즈'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헨리 7세는 왕권 강화와 중앙 집권화에 주력하였고, 대귀족들의 권력을 견제하고 국왕의 재정 기반을 확립하는 데 힘썼다. 그는 새로운 조세 제도와 상공업 장려 정책을 도입하여 왕실 수입을 늘렸고, 법률 제도 역시 중앙 집권적 통제하에 재편하였다. 특히 사법적 권한을 왕실 법원에 집중시키고, 사병의 사용을 제한하며 반란의 소지를 제거하는 등 질서 회복과 통치 안정에 기여하였다. 헨리 7세는 대외적으로는 신중한 외교를 펼치며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강국과의 결혼 동맹과 협약을 통해 잉글랜드의 외교적 입지를 다졌다. 이러한 정책들은 훗날 그의 아들 헨리 8세, 손녀 엘리자베스 1세의 절대왕정 체제 구축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보스워스 전투는 단순한 전투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중세의 혼란스러운 귀족 권력 중심 사회에서 근대적인 중앙 집권 왕권 체제로의 전환을 알리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보스워스 전투의 역사적 의미와 현대적 재해석
보스워스 전투는 영국사에서 단순한 왕위 교체의 순간이 아니라, 중세 봉건적 질서에서 근대 국가의 형성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놓인 분기점이었다. 이 전투로 인해 전근대적인 귀족 간 권력 다툼이 종식되고, 왕권을 중심으로 한 통일된 국가 운영이 가능해졌으며, 이는 영국이 향후 근대 국가로서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리처드 3세는 오랜 기간 폭군으로 평가되었지만, 최근에는 '리처드 3세 재평가' 움직임 속에서 그의 개혁 정책이나 실질적인 통치 능력에 대한 재조명도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2012년에는 그의 유해가 레스터의 주차장에서 발굴되어 큰 관심을 모았으며, 이를 계기로 보스워스 전투의 역사적 현장도 재조명되었다. 한편 헨리 7세는 '현명한 군주'로서의 이미지를 통해 후계 왕들에게 안정된 기반을 물려준 인물로 기억되며, 그의 정책은 오늘날 정치 제도와 재정 정책의 시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보스워스 전투는 '왕이 된 자와 사라진 왕'이라는 극명한 대비 속에서, 권력의 본질과 그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자, 정치의 본질이 언제나 정당성과 지지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보스워스는 단지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닌, 현재의 정치 체제와 국가 운영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오늘날에도 이 전투는 문학, 드라마, 역사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조명되며, 그 역사적 의미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