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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 백년전쟁: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대서사시 백년전쟁의 기원과 배경백년전쟁(1337–1453)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오랜 왕위 계승 문제와 영토 분쟁에서 비롯된 장기간의 전쟁이다. 잉글랜드 왕가인 플랜태저넷 가문은 프랑스 내 광범위한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프랑스 왕권과 끊임없는 충돌을 빚고 있었다. 특히 1328년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그의 누이의 아들인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 계승을 주장하면서 전면전의 서막이 올랐다. 프랑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를 왕위에 올리면서 전쟁은 불가피해졌다.초기 잉글랜드의 승리: 크레시와 푸아티에백년전쟁 초기, 잉글랜드는 장궁(longbow)을 활용한 전술 혁신으로 프랑스 기병을 압도했다. 1346년 크레시 전투에서는 에드워드 3세의.. 2025. 11. 29.
전쟁사 - 진시황의 통일전쟁과 중국 최초의 제국 탄생 전국시대의 혼란과 진나라의 부상기원전 3세기경, 중국 대륙은 진(秦), 초(楚), 제(齊), 연(燕), 한(韓), 조(趙), 위(魏)의 7개 강국이 각축을 벌이던 전국시대였다.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때로는 연합하며 끝없는 전쟁을 벌였고, 이러한 분열은 수세기에 걸쳐 이어졌다. 하지만 진나라는 법가 사상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 상앙의 개혁을 통한 군사력 강화,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과 교통망 확장 등을 통해 타국에 비해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진왕 정(후의 진시황)은 천하 통일이라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전쟁을 개시하였다.6국 정복: 전략과 무력의 결합진시황은 하나씩 강대국들을 격파하며 통일의 길을 닦았다. 먼저 한나라는 지리적으로 진나라와 인접해 있었고, 군사력도 .. 2025. 11. 29.
전쟁사 - 트라팔가 해전과 넬슨 제독의 전략적 천재성 영국과 나폴레옹 전쟁, 해상 지배권의 운명을 가른 전투1805년 10월 21일,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인 스페인의 트라팔가르 곶 근해에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해전 중 하나가 벌어졌다. 이는 영국 왕립 해군과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 간의 대결로, 전개된 시점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유럽 대륙을 정복하며 패권을 장악하던 시기였다. 나폴레옹은 영국 본토 침공을 꿈꾸었고,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은 해상 지배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 해군은 오랜 전통과 전력을 기반으로 프랑스의 해양 야망을 끈질기게 견제해왔으며, 특히 호레이쇼 넬슨 제독은 전투 전부터 ‘함대 결정전’을 통해 프랑스 해군을 무력화시키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트라팔가 해전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유럽 대륙의 운명과 영.. 2025. 11. 29.
전쟁사 - 가미카제 특공대와 태평양 전쟁 말기의 절망 제국의 몰락을 앞두고 등장한 극단적 전술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 제국은 점점 좁혀오는 미군의 포위망 속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 1944년부터 미군은 태평양 섬들을 하나씩 점령해가며 일본 본토를 위협했고, 필리핀 탈환 작전(레이테만 해전)을 계기로 일본 해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군사적 열세 속에서 일본군은 전통적인 전술로는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였다. 이는 자발적 혹은 명령에 의한 자살 공격으로 적의 항공모함이나 군함에 직접 돌진해 타격을 입히는 방식이었다. 가미카제는 단순한 전술이 아닌, 당시 일본의 병참 상황, 정신문화, 전쟁에 대한 국가적 체념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비극적 전략이었다.실행: 인간 .. 2025. 11. 27.
전쟁사 - 사라예보 사건과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 복잡하게 얽힌 유럽의 정치 구도 속 비극의 시작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발칸 반도에서 세르비아와 영향력을 두고 경쟁 중이었고, 대공의 방문은 이미 민감한 정치적 도발로 여겨지고 있었다. 암살 사건은 그 자체로 하나의 비극이었지만, 문제는 이를 둘러싼 유럽 열강들의 상호 불신과 군사 동맹 체계에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독일의 전폭적인 지지를 믿고 세르비아에 엄격한 최후통첩을 보냈고, 세르비아는 이를 대부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는 이를 빌미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가 .. 2025. 11. 27.
전쟁사 - 바르바로사 작전과 독소전쟁의 시작 히틀러의 야망과 소련 침공의 결정적 계기제2차 세계대전의 최대 전환점 중 하나로 꼽히는 바르바로사 작전은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히틀러는 소련을 파괴하고 동부 유럽을 독일의 생활권으로 삼겠다는 계획 아래 유럽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무려 300만 명 이상의 병력과 수천 대의 전차 및 항공기가 동원된 이 작전은 세 개의 축선으로 나뉘어 소련의 중심부를 향해 진격했다. 히틀러는 소련이 빠르게 붕괴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초기에는 독일군이 빠른 진격을 보이며 대규모 포로를 잡고 수도 모스크바 근처까지 도달했지만, 소련은 전략적 후퇴와 함께 도시 방어에 전력을 다하며 시간을 벌었다. 이처럼 작전의 발단은 단순한.. 2025.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