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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 잔 다르크와 백년전쟁: 민족의 여명기를 연 성녀의 전장

by simplelifehub 2025. 11. 25.

영국과 프랑스의 왕위 계승 분쟁에서 시작된 100년 전쟁의 배경

백년전쟁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에 걸쳐 간헐적으로 벌어진 전쟁으로, 단순히 프랑스와 영국 간의 영토 분쟁에 그치지 않고 중세 봉건질서의 붕괴와 민족국가 형성이라는 역사적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이 전쟁은 영국 왕이었던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는 프랑스의 마지막 카페 왕조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발생한 공백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모계 혈통을 근거로 프랑스 왕위를 주장했지만, 프랑스 귀족들은 살리카법을 내세워 여성 혈통을 배제하고 발루아 가문의 필립 6세를 왕으로 선출했다. 이에 불복한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면전에 돌입했고, 이후 양국은 플랑드르, 노르망디, 아키텐 등 전략적 요충지를 놓고 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벌이게 된다. 특히 잉글랜드는 장궁을 이용한 전술 혁신을 통해 크레시 전투(1346), 푸아티에 전투(1356) 등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위를 점했고, 프랑스는 중앙집권의 부재와 귀족 간 내분으로 인해 전쟁 초기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전쟁은 단순한 전투의 연속이 아니라, 흑사병의 창궐, 농민 봉기, 왕실 간 암투 등 다양한 사회적 격변과 맞물리면서 전개되었고, 그 가운데 하나의 상징적인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오를레앙의 성녀’ 잔 다르크였다.

민족주의의 화신, 잔 다르크의 등장이 전장의 흐름을 바꾸다

1429년, 프랑스의 절망적인 전황 속에서 나타난 17세의 농촌 소녀 잔 다르크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는 주장과 함께 프랑스 왕세자 샤를 7세를 찾아가 자신이 프랑스를 구할 사명을 지녔다고 선언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파리를 비롯한 북부 대부분이 영국군 혹은 부르고뉴파의 통제 아래 있었고, 왕세자조차 샹봉 지방에서 허덕이며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잔 다르크는 기적적인 설득력과 강한 신념으로 왕세자와 그의 측근들을 감화시켰고, 곧이어 그녀는 오를레앙 해방 작전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오를레앙 전투는 백년전쟁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9일간의 격전 끝에 프랑스는 이 전략 요충지를 탈환했고, 이는 국민들의 사기 진작은 물론, 샤를 7세의 랭스 대관식으로 이어져 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잔 다르크의 등장은 단순한 전술적 승리를 넘어 민족주의적 감정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녀는 프랑스 민중에게 ‘신의 도구’, ‘조국의 수호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과 영향력은 동시에 위협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1430년 부르고뉴파에 의해 포로로 잡힌 잔 다르크는 영국 측에 넘겨지게 된다. 이후 그녀는 이단 재판에 회부되어 화형당했지만, 그녀의 죽음은 오히려 프랑스 민족의 저항 의지를 결집시키는 도화선이 되었으며, 그녀의 존재는 전장의 전략적 전환점뿐 아니라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전쟁의 종결과 민족국가로의 도약, 그리고 잔 다르크의 유산

잔 다르크의 순교 이후에도 백년전쟁은 한동안 계속되었으나, 프랑스는 점차 전력을 회복하고, 특히 샤를 7세의 치세 하에서 군제 개혁과 중앙집권화가 추진되었다. 신설된 직업군과 상비군 체제는 영국에 비해 압도적인 병력 유지 능력을 가능케 했고, 점차 영국군은 프랑스 본토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1453년 카스티용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백년전쟁은 종결되었다. 영국은 칼레를 제외한 모든 대륙 영토를 상실했고, 프랑스는 내부의 통합과 왕권 강화를 통해 명실상부한 근대 국가로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점의 중심에는 잔 다르크가 있었으며, 그녀의 희생은 단순히 종교적 상징을 넘어 국민 공동체의 정체성과 저항 정신을 집약하는 존재로 남게 되었다. 1920년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된 잔 다르크는 이후에도 프랑스의 국모이자 민족 정신의 구현체로 숭배받았으며, 19세기 국민주의 시대와 20세기 양차대전기에는 더욱 부각되었다. 잔 다르크의 이야기는 단지 전쟁사 속의 전환점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세 말기의 신앙, 정치, 민족의식을 한데 아우르는 종합적인 상징이며, 그녀가 등장한 백년전쟁은 유럽 중세 질서의 종말과 근대 국가 체제의 서막을 동시에 알린 역사적 교차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