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의 기원과 배경
백년전쟁(1337–1453)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오랜 왕위 계승 문제와 영토 분쟁에서 비롯된 장기간의 전쟁이다. 잉글랜드 왕가인 플랜태저넷 가문은 프랑스 내 광범위한 영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프랑스 왕권과 끊임없는 충돌을 빚고 있었다. 특히 1328년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그의 누이의 아들인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 계승을 주장하면서 전면전의 서막이 올랐다. 프랑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를 왕위에 올리면서 전쟁은 불가피해졌다.
초기 잉글랜드의 승리: 크레시와 푸아티에
백년전쟁 초기, 잉글랜드는 장궁(longbow)을 활용한 전술 혁신으로 프랑스 기병을 압도했다. 1346년 크레시 전투에서는 에드워드 3세의 지휘 아래 프랑스군을 대파하였고, 이 전투는 중세 전술의 판도를 뒤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어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는 잉글랜드 왕세자 ‘흑태자 에드워드’가 프랑스 왕 장 2세를 생포하며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 인해 1360년 브레티니 조약이 체결되었고, 프랑스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며 일부 영토를 잉글랜드에 넘기게 된다.
전쟁의 반전과 잔 다르크의 등장
그러나 15세기 초반, 잉글랜드의 헨리 5세가 다시 프랑스를 침공하며 전쟁은 격화되었다.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잉글랜드는 다시 한번 대승을 거두었고, 헨리 5세는 프랑스 왕위 계승자로까지 지명된다. 그러나 그의 이른 죽음과 함께 정세는 급변하였다. 이 시점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프랑스의 민족적 영웅 잔 다르크였다. 그녀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프랑스군을 결집시켰고, 1429년 오를레앙 포위를 해제하며 프랑스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잔 다르크는 결국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혀 화형을 당했지만, 그녀의 활약은 프랑스 민심을 결집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전쟁의 종결과 역사적 의미
전쟁의 후반부에 들어 프랑스는 장기적 전쟁에 지친 잉글랜드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1453년, 카스티용 전투에서 프랑스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전쟁은 사실상 종결되었고, 잉글랜드는 칼레를 제외한 모든 대륙 영토를 상실하게 된다. 백년전쟁은 군사 전략, 국가 정체성, 왕권 구조 등에서 중세 유럽의 판도를 바꾸었다.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왕권을 강화하고 근대 국가로의 기반을 다졌으며, 잉글랜드는 내전인 장미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또한 이 전쟁은 근세 유럽 전쟁사에 있어 장기 전쟁의 전형이 되었고, 잔 다르크와 같은 전설적 인물을 남긴 문화적 유산도 막대하였다.
결론: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전환점
백년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닌, 중세 봉건 질서의 붕괴와 근대적 국가 질서의 출발점이 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전쟁을 통해 프랑스는 왕권 중심의 통일된 국가로 성장하였고, 잉글랜드는 점차 대륙 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 해양 강국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또한 이 전쟁은 전술, 무기, 국민의식, 정치 체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럽의 역사 흐름을 바꿨으며, 이후 벌어질 근대 전쟁의 원형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백년전쟁은 단순히 한 세기를 이어온 전투가 아니라, 유럽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꾼 대서사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