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산업이 되었고, 인간은 상품이 되었다
아도르노는 동시대 대중문화를 ‘문화 산업(culture industry)’이라 불렀다. 이는 예술이나 문화가 자율성과 독창성을 지닌 창조 행위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의 논리에 따라 생산되고 유통되는 산업 구조로 변질되었음을 의미한다. 영화, 라디오, 대중음악 같은 콘텐츠는 대량 생산과 소비를 전제로 하며, 철저히 계산된 포맷과 클리셰를 반복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감동이나 비판을 유도하는 고유한 힘을 잃고, 오로지 쾌락과 소비의 대상이 된다. 인간 역시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감상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저 상품을 소비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문화 산업은 단지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원하는 사고와 감정 구조를 반복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인간의 사유 능력을 무디게 만든다.
표준화와 의사개성은 사고의 다양성을 지운다
문화 산업의 핵심 특징은 ‘표준화’와 ‘의사개성’이다. 표준화는 콘텐츠가 일정한 공식과 서사 구조에 따라 제작되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소비되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대중은 낯섦이나 불편함 없이 익숙한 구조 안에서 안락함을 느끼게 되고, 새로운 것을 사유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려는 시도는 점점 사라진다. 반면 의사개성은 각 콘텐츠가 독특한 것처럼 포장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본질적 차이가 없는 동일한 구조를 반복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배우와 배경, 음악을 가진 드라마라도 결국 전달하는 가치와 감정 구조는 동일한 경우가 많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비판적 사유를 억압하고, 대중을 사고하지 않는 존재로 훈육한다고 비판했다. 대중문화는 자율적 예술이 아니라 체제에 순응하도록 길들이는 장치라는 것이다.
비판 없는 수용은 자유의 종말을 부른다
아도르노가 가장 우려한 것은 대중이 이러한 문화 산업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오락과 편안함 속에서 사람들은 체제에 대한 비판 의식이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순응적 인간을 만드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다. 문화 산업은 사유를 대체할 감정, 긴장, 웃음, 눈물을 계획적으로 제공하며, 인간이 스스로의 현실을 성찰할 시간을 빼앗는다. 아도르노는 진정한 예술은 낯섦과 불편함을 통해 기존 체계를 뒤흔들고, 인간에게 사유의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문화 산업은 이러한 불편함을 제거하고, 반복과 쾌락만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이념적으로 마비시키는 장치가 된다. 오늘날 알고리즘과 스트리밍 플랫폼이 이끄는 콘텐츠 소비 환경 속에서, 아도르노의 비판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