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절대적 진리를 증명하지 않는다
칼 포퍼는 과학의 핵심이 이론의 ‘증명’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귀납법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수많은 사례를 관찰해도 그것이 일반법칙을 '증명'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백조가 모두 흰색이라는 수많은 관찰이 있어도, 단 하나의 검은 백조의 발견이 이 법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처럼 과학적 명제는 결코 참으로 확증될 수 없고, 언제든 반증될 가능성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포퍼는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을 제시하였다. 즉, 어떤 이론이 참인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반증 가능한가의 여부이다. 신념 체계나 이데올로기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반박될 수 없는 주장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증 가능성은 과학의 합리성을 보장하는 기준이다
포퍼에게 반증 가능성은 단지 하나의 철학적 입장이 아니라, 과학이 합리성을 유지하기 위한 본질적 조건이었다. 그는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은 증거를 통해 이론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오류를 지속적으로 제거하고 살아남은 이론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과학자는 자신의 이론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시험에 부쳐야 하며, 이론이 비판을 견디지 못할 경우에는 기꺼이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포퍼는 과학을 ‘열린 체계’로 보았다. 완전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류 가능성을 전제로 비판을 반복하는 과정 자체가 과학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반증 가능성은 단순히 철학적 구분 기준을 넘어서, 과학자 개인의 태도와 과학 공동체의 윤리로까지 확장된다.
비판적 합리주의와 열린 사회를 향한 포퍼의 철학
포퍼는 과학철학을 넘어서 정치철학과 사회철학에서도 비판적 합리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나 역사주의적 유토피아 이론을 비판하며, 모든 체계는 끊임없는 비판과 수정 가능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닫힌 사회는 자신에 대한 반론을 억압하거나 제거하고, 오류 가능성을 부정함으로써 오히려 비합리성을 조장한다. 이에 반해 열린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고, 사회 구조와 제도가 끊임없이 비판을 통해 진화하는 체계를 지향한다. 포퍼의 철학은 과학뿐 아니라 민주주의, 교육, 시민적 윤리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확장성을 갖는다. 우리가 진리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포퍼는 겸허하고도 비판적인 태도를 통해 더 나은 사회와 지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반증주의는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니라, 현대 문명의 지적 기반을 구성하는 핵심 원리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