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부버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철학자이자 종교사상가로, 인간 존재를 근본적으로 관계 속에서 이해했다. 그는 『나와 너』에서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를 두 가지 양식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나-그것(I-It)’ 관계로, 대상과의 관계를 도구적·객관적으로 취급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나-너(I-Thou)’ 관계로, 상대방을 독립적이고 고유한 존재로 인정하며 전인격적으로 만나는 관계다. 부버에 따르면 진정한 인간성은 ‘나-너’ 관계 속에서만 실현되며, 이러한 관계는 상호성·존중·현존을 기반으로 한다.
나-너와 나-그것의 차이
‘나-그것’ 관계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물이나 사람을 수단, 정보, 역할로만 대할 때 형성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를 단순히 업무 수행 능력으로만 평가하거나, 고객을 수익 창출의 대상으로만 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 ‘나-너’ 관계는 상대를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전체로 대하는 태도다. 이 관계는 상호성이 핵심이며, 양쪽 모두가 진정한 의미에서 서로를 인식하고 존중한다. 부버는 이러한 ‘나-너’ 관계가 일시적일지라도, 그것이 인간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순간이라고 보았다.
진정한 만남과 현존
부버에게 ‘나-너’ 관계는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현존’의 경험이다. 이는 상대방과 마주하는 순간, 과거와 미래의 계산을 내려놓고 오직 현재의 만남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만남에서는 언어, 침묵, 시선, 감정 모두가 의미를 가진다. 종교적 차원에서 부버는 궁극적인 ‘너’를 신으로 보았으며, 모든 참된 ‘나-너’ 관계는 궁극적으로 신과의 관계로 나아간다고 해석했다. 즉,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만남은 초월적인 차원과 연결된다.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
오늘날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되면서 인간 관계는 점점 ‘나-그것’ 방식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사람을 프로필, 데이터, 알고리즘이 추천한 이미지로만 인식하는 경향은 부버가 경계한 대상화의 전형이다. 그러나 부버의 사상은 우리가 여전히 ‘나-너’의 진정한 만남을 경험하고 추구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이는 가족, 친구, 연인, 공동체뿐 아니라, 직장과 사회적 관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부버는 진정한 만남이 인간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공동체를 더 깊은 연대 속으로 이끈다고 보았다. 그의 철학은 오늘날의 관계 위기를 극복하는 데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