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질은 투명함이다. 창문, 안경, 전시 진열장, 스마트폰 화면까지 유리는 ‘보이되 막아주는’ 물질로 사용된다. 우리는 유리가 투명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유리의 역사에서 투명함은 처음부터 핵심 가치가 아니었다. 유리는 오랫동안 장식 재료였고, 색이 있는 유리나 불투명에 가까운 유리가 더 흔한 시기조차 있었다. 그렇다면 왜 유리는 결국 ‘투명해야 한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을까. 이 글에서는 유리가 투명성을 중심 성질로 굳혀온 과정을, 일상 사물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유리는 처음부터 창문 재료가 아니었다
유리가 널리 쓰이기 전, 사람들은 바람을 막기 위해 천이나 나무, 종이, 가죽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다. 빛을 들이는 일은 중요했지만, 동시에 추위와 먼지를 막아야 했기 때문에 완전한 개방은 어려웠다. 초기의 주거 공간은 빛과 방어 사이에서 계속 타협해야 했다. 유리가 등장했을 때도 그 역할은 지금과 달랐다. 유리는 희귀했고 제작이 까다로웠으며, 작은 조각으로만 만들기 쉬웠다. 따라서 초기 유리는 넓은 면을 덮는 창재가 아니라, 장식품이나 작은 삽입물로 사용되기 쉬웠다. 게다가 초기 유리는 현재처럼 맑지 않았다. 불순물이 많았고, 표면이 고르지 않았으며, 빛을 통과시키더라도 왜곡이 발생했다. 완전한 투명은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은 목표였다. 즉 유리는 ‘투명한 창문’이라는 목적을 위해 탄생한 사물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며 점차 역할을 찾아간 재료였다.
투명함은 기술이 아니라 요구가 만들어낸 기준이었다
유리가 투명해야 한다는 기대는 먼저 사회적 요구에서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바람과 비를 막으면서도, 실내에 빛을 들이고 바깥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원했다. 벽은 안전하지만 어두웠고, 개방은 밝지만 취약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보이면서 막아주는’ 물질이 필요해졌다. 이 요구가 커질수록 유리의 가장 가치 있는 성질은 ‘빛을 통과시키는 능력’이 되었다. 유리는 장식의 재료에서, 공간을 설계하는 재료로 이동했다. 밝은 실내는 생활의 질을 바꾸었고, 바깥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공간의 감각을 바꾸었다. 그 결과 유리는 점점 더 투명해야 했다. 흐릿한 유리는 빛은 들이지만 시야를 방해했고, 색이 있는 유리는 분위기를 만들 수는 있어도 ‘있는 그대로 보기’에는 제약이 있었다. ‘보기’라는 기능이 중요해질수록 투명함은 선택이 아니라 기준이 되었다. 이때 투명함은 단순한 물리적 성질이 아니라, 사람들이 유리를 통해 기대하는 역할의 이름이 되었다.
투명 유리는 생활의 규칙과 시선을 바꾸었다
투명한 유리가 일상에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함께 변했다. 창문은 단지 구멍이 아니라, 빛과 시선을 조절하는 장치가 되었다. 실내는 더 밝아졌고, 낮 시간의 활동 범위가 확장되었다. 유리는 시간을 늘린 셈이기도 했다. 또한 투명한 유리는 ‘보여짐’의 문제를 만들어냈다. 바깥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바깥에서도 안이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커튼과 블라인드, 창호의 구조가 발달한 배경에는 이 새로운 시선의 문제도 깔려 있었다. 투명함은 편리함과 함께 노출의 부담을 동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 유리가 표준이 된 이유는 분명하다. 투명함은 유리를 ‘없으면서 있는’ 물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만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상태는 건축과 생활 공간에 가장 유리한 조건이었다. 불투명한 벽과는 달리, 투명한 유리는 공간을 넓어 보이게 만들고, 빛을 끌어들이며, 바깥과의 연결감을 유지해 준다. 결국 유리가 투명해야 한다는 생각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사람들이 유리에 부여한 역할이 만들어낸 기준이었다. 유리는 단순히 맑아진 것이 아니라, ‘맑아야 하는’ 사물로 사회가 요구하며 길들여진 것이다. 우리가 유리를 투명한 물질로 당연시하는 순간에도, 그 투명함은 오랜 기술의 축적과 생활의 요구가 함께 만든 결과로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