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한 주를 7일로 사용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이 구조는 일정 관리와 생활 리듬의 기본 단위가 되었고, 달력과 시계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질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하루와 1년처럼 자연 현상에 직접 대응하는 시간 단위와 달리, ‘일주일’은 자연에서 곧바로 관찰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7일이 한 주의 기준이 되었을까. 이 글에서는 7일이라는 단위가 어떻게 선택되었고, 어떤 이유로 다른 선택지를 밀어내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를 일상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자연에는 ‘일주일’이라는 단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을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자연 현상이었다. 하루는 해의 이동으로, 한 달은 달의 변화로, 1년은 계절의 순환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뚜렷한 중간 단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주일은 자연에서 직접적으로 관찰되는 주기가 아니었다. 달의 주기는 약 29.5일로, 이를 단순히 나누면 대략 네 구간이 만들어진다. 이 네 구간은 초승, 상현, 보름, 하현으로 나뉘며, 각 구간은 약 7일 정도에 해당한다. 이때부터 7일이라는 길이는 자연 현상을 간접적으로 반영한 편의적 단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점은 이 분할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달의 주기는 깔끔하게 나누어지지 않았고, 7일은 근사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위는 관찰과 계산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타협점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일주일은 자연이 제공한 필연적 단위라기보다, 자연을 이해하기 쉽게 나눈 인간의 선택이었다.
7일은 사회를 조직하기에 가장 편리한 길이였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시간은 개인의 감각이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해야 할 기준이 되었다. 시장이 열리는 날, 종교 의례가 치러지는 시기, 휴식과 노동의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는 반복 가능한 중간 단위가 필요했다. 이때 7일은 지나치게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단위였다. 며칠 단위의 주기는 일정 관리에 혼란을 주었고, 열흘 단위 이상의 주기는 생활 리듬을 조정하기에 부담스러웠다. 7일은 인간의 기억과 생활 패턴에 잘 맞아떨어지는 길이였다. 또한 7일은 분할과 반복에 유리했다. 한 달을 네 번의 주기로 나눌 수 있었고, 노동과 휴식의 주기를 안정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이 구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졌고, 다른 단위와 비교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7일은 단순한 시간 단위를 넘어, 사회 활동을 정렬하는 기본 틀이 되었다.
7일은 관습이 되어 선택지를 지워버렸다
한 주가 7일로 굳어지면서, 다른 가능성은 점차 사라졌다. 더 짧거나 더 긴 주기를 상상할 필요가 없어졌고, 모든 일정과 제도가 이 구조에 맞춰 재편되었다. 달력, 학교 시간표, 노동 일정, 휴일 개념까지 7일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구조가 오래 유지될수록, 7일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 질서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왜 7일인지 묻는 질문 자체가 낯설어졌고, 다른 단위는 비현실적인 상상으로 취급되었다. 중요한 것은 7일이 가장 정확하거나 가장 과학적인 단위여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모든 제도가 이 구조에 맞춰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꾸는 비용이 지나치게 커졌을 뿐이다. 7일은 효율의 산물이 아니라, 관습의 승자였다. 결국 한 주가 7일로 고정된 것은 자연의 명령이 아니라, 사회적 편의와 반복 사용이 만들어낸 합의의 결과였다. 우리가 매주 월요일을 맞이하고 일요일을 마무리하는 일상은, 오랜 시간 축적된 선택이 굳어져 형성된 생활의 틀에 가깝다. 일주일이라는 단위는 시간을 설명하기보다, 시간을 함께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적인 장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