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물건은 교과서다. 교사는 교과서를 기준으로 진도를 나가고, 학생은 교과서를 통해 배운 내용을 정리한다. 교과서는 학습의 중심 도구처럼 사용되며, 수업의 방향과 범위를 결정한다. 그러나 학습이 반드시 교과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이유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글에서는 교과서가 수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과, 그 선택이 교육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본다.
배움은 원래 책에 묶여 있지 않았다
초기의 교육에서 책은 필수 요소가 아니었다. 학습은 주로 말과 반복, 모방을 통해 이루어졌고, 지식은 사람을 통해 전달되었다. 스승의 설명과 제자의 기억이 학습의 핵심이었으며, 책은 참고 자료에 가까웠다. 책이 귀하고 제작 비용이 높았던 시기에는 모든 학습자가 동일한 내용을 책으로 접하는 것이 어려웠다. 따라서 교육은 자연스럽게 구술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학습의 깊이와 방향은 스승의 판단에 따라 달라졌다. 이러한 방식에서는 학습 내용이 유동적이었다. 상황과 대상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졌고, 동일한 주제라도 전달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즉 배움은 책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었다.
교과서는 교육을 안정시키는 기준이 되었다
교육이 제도화되고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학습 내용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졌다. 누가 가르치더라도 비슷한 내용을 전달해야 했고, 교육의 범위와 수준을 외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이때 교과서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였다. 동일한 책을 사용하면 수업의 내용과 순서를 쉽게 통제할 수 있었고, 교사의 개인차도 줄일 수 있었다. 교과서는 교육의 기준점 역할을 했다. 또한 교과서는 평가와도 잘 결합되었다. 시험 문제는 교과서를 기준으로 출제되었고, 학습자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교과서는 학습과 평가를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업은 점점 교과서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책에 없는 내용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고, 교과서는 수업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 되었다.
교과서 중심 수업이 만든 효과와 한계
교과서 중심 수업은 교육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학생은 어디에서 무엇을 배울지 미리 알 수 있었고, 교육 과정은 비교적 균등하게 유지되었다. 대규모 교육을 운영하는 데 교과서는 핵심 장치였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학습을 수동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학생은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따라가는 존재가 되었고, 질문과 탐구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교과서 밖의 사고는 시험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교과서는 지식을 고정된 형태로 제시했다. 변화하는 현실이나 다양한 관점은 책의 분량과 구성 안에서 제한적으로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수업은 점차 ‘책을 끝내는 일’로 인식되기 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중심 수업이 유지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보다 많은 학생에게 동일한 기준을 제공하는 도구가 아직 널리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학습의 본질을 완벽하게 담은 도구라기보다, 교육을 제도로 유지하기 위해 선택된 가장 안정적인 장치였다. 결국 수업이 교과서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은 학습 효과에 대한 최적 해답이라기보다, 교육을 관리하고 설명하기 위한 선택의 결과였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교과서는 절대적인 지식의 상징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교육 도구라는 점이 드러난다. 교과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배움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