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나누고 정리함으로써 이해해왔다. 무엇이 같은지, 무엇이 다른지를 구분하는 행위는 생존과 판단에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분류는 단순한 편의의 도구에 머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분류는 세계를 설명하는 기준이 되었고, 그 기준은 점점 고정된 질서처럼 받아들여졌다. 이 글에서는 분류가 어떻게 사고의 틀이 되었는지, 범주가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로 작동하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생존의 기술과 행동을 돕는 감각에 가까웠던 분류
초기의 분류는 매우 실용적인 목적에서 출발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안전한 장소와 위험한 장소를 가르는 일은 곧 생존과 직결되었다. 이러한 구분은 경험을 통해 축적되었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었다. 이 시기의 분류는 절대적이지 않았다. 같은 대상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취급되었고, 경계는 고정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범주보다, 당장의 판단이었다. 분류는 설명을 위한 체계라기보다, 행동을 돕는 감각에 가까웠다. 무엇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고정된 답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다시 정해졌다. 이러한 유연성은 분류가 아직 사고를 지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분류는 도구였지, 세계 그 자체는 아니었다.
범주가 기준이 되기 시작한 순간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분류는 점점 안정성을 요구받게 되었다. 물건을 나누고, 사람을 구분하고, 지식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공통된 기준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분류는 상황적 판단에서 벗어나, 유지되어야 할 체계로 변하기 시작했다. 범주는 반복 사용을 통해 익숙해졌고, 익숙함은 당연함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점점 범주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엇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다시 판단할 필요가 없는 문제처럼 여겨졌다. 이 과정에서 분류는 설명의 출발점이 되었다. 대상이 무엇인지를 묻기보다,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범주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틀이 되었고, 그 틀 안에서 세계가 해석되었다. 분류는 이렇게 사고의 편의를 넘어, 사고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고정된 분류가 만들어낸 인식의 한계
분류가 사고의 기본 전제가 되자, 세계는 점점 더 단순화되었다. 범주에 맞는 것은 쉽게 이해되었지만, 맞지 않는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남았다. 경계에 걸친 것들은 애매한 존재가 되었고, 때로는 문제로 취급되었다. 고정된 분류는 안정감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변화를 포착하는 감각을 약화시켰다. 새로운 현상은 기존 범주에 끼워 맞춰졌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차이가 지워지기도 했다. 또한 분류는 가치 판단과 결합했다. 어떤 범주에 속하느냐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 분류는 세계를 정리했을 뿐 아니라, 위계를 만들어냈다.
결국 분류는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현실을 고정시키는 역할도 수행했다. 인간은 복잡한 세계를 감당하기 위해 범주를 만들었지만, 그 범주는 다시 인간의 사고를 제한하는 틀이 되었다. 분류의 역사는 세계를 단순화하려는 노력과, 그 단순화가 낳은 인식의 손실이 함께 쌓여온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많은 구분 역시, 특정한 시점과 필요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분류가 가진 힘과 한계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