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네이글은 현대 분석철학에서 의식 문제를 다룰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상가다. 그는 1974년 발표한 논문 「박쥐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What Is It Like to Be a Bat?)」에서, 의식이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며 제3자의 객관적 관점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네이글은 박쥐를 예로 들어, 우리가 박쥐의 생물학적 구조나 행동 패턴을 아무리 상세히 이해하더라도, 박쥐가 초음파로 세상을 지각하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해당하는 주관적 경험을 직접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물리주의적 설명이 의식의 질적 성질(qualia)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비판이다. 네이글의 논의는 의식 연구와 인지과학, 심리철학뿐 아니라, 인공지능 논쟁에서도 중요한 철학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의식의 본질은 주관성에 있다
네이글에 따르면 의식의 핵심은 특정한 관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주관성이다. 그는 이를 ‘무엇이 되는 것은 어떤가(what it is like)’라는 표현으로 개념화했다. 이 관점에서 의식은 단순히 정보 처리 과정이 아니라, 특정한 경험이 ‘어떤 느낌을 주는가’라는 질적 성질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을 보는 경험은 단순히 뇌에서 특정 파장의 빛을 처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빨강을 느끼는 것’이라는 고유한 질감을 수반한다. 이러한 질적 성질은 제3자적 과학적 서술로는 완전히 환원되지 않으며, 바로 이 점에서 의식 연구의 한계가 드러난다. 네이글은 물리주의가 의식의 이러한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주관적 경험을 포괄하는 새로운 철학적·과학적 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박쥐의 사례와 제3자 관점의 한계
네이글이 박쥐를 예로 든 이유는 박쥐가 인간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박쥐는 초음파를 발사하고 반사파를 감지하여 주변 환경을 ‘보는’데, 이는 인간의 시각 경험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박쥐의 신경 구조나 초음파 감지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그 모든 지식이 박쥐가 실제로 세상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네이글은 이를 통해 과학적·객관적 설명이 결코 주관적 체험을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는 제3자 관점이 중요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의식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의식을 다루는 모든 학문적 시도에서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논거가 된다.
의식 연구와 철학적 함의
네이글의 논의는 의식 연구에서 ‘하드 문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라 불리는 주제를 촉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의식의 주관성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단순한 물리적 환원주의를 넘어선 다층적 접근을 제안했다. 이 입장은 인공지능과 관련된 논의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언어를 사용하고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무엇이 되는 것은 어떤가’를 가질 수 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네이글은 의식을 이해하려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경험을 모두 포괄하는 철학적 틀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과학, 철학, 현상학이 협력하는 새로운 형태의 연구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그의 논의는 의식의 신비로움을 단순히 설명의 부족이 아닌, 본질적 특성으로 인정하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