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3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 해당하는 고대 후기(Late Antiquity)는 고대 로마 세계가 해체되고 중세 유럽과 지중해 세계가 형성되는 장기적 전환기였다. 이 시기는 오랫동안 ‘로마의 몰락’ 혹은 ‘암흑기로의 추락’으로 설명되어 왔으나, 현대 고고학은 이를 붕괴가 아닌 구조적 재편의 시기로 이해한다. 도시, 경제, 종교, 정치 질서는 단절되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물질 문화에 분명히 남아 있다. 이 글에서는 고대 후기의 사회적 특징, 로마적 질서의 변형 양상, 그리고 고고학이 밝혀낸 중세 세계의 형성 과정을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고대후기의 가장 큰 변화인 로마 도시의 성격 변화
고대 후기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로마 도시의 성격 변화다. 고전기 로마 도시를 상징하던 포룸, 원형극장, 공중목욕탕은 점차 기능을 상실하거나 축소되었다. 고고학적으로는 공공 건축물이 해체되어 주거 공간이나 작업장으로 전용된 흔적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는 도시의 즉각적 붕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도시는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행정·종교 중심지로 기능했다. 성벽의 재축조와 방어 시설 강화는 외부 위협에 대응한 적응 전략이었다. 도로와 수로 역시 완전히 폐기되지 않았다. 일부 구간은 유지·보수되며 지역 단위 교류를 지속적으로 지탱했다. 이는 제국 차원의 인프라는 약화되었지만, 지방 사회의 실용적 요구는 계속 충족되었음을 보여준다. 도시는 더 이상 제국의 상징이 아니라, 생존과 방어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고대 후기 경제 구조의 축소와 지역화
고대 후기에는 장거리 교역망이 축소되고, 지역 경제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대량 생산 도자기와 통일된 화폐 유통은 감소하며, 지역별 생산과 소비가 중심이 되었다. 고고학적으로 이는 유물 양식의 다양화와 표준화 붕괴로 확인된다. 농업은 여전히 사회의 기반이었지만, 대토지 중심의 제국적 운영 방식은 변화했다. 대규모 빌라 시스템은 일부 지역에서 해체되거나 요새화되었고, 이는 귀족 권력의 성격 변화를 반영한다. 화폐 사용의 감소는 오랫동안 경제 쇠퇴의 지표로 해석되었으나, 최근 연구는 교환 방식의 변화로 본다. 현물 교환과 지역 네트워크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형성했다. 이러한 지역화는 고대 경제의 종말이 아니라, 중세 경제 구조의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고고학이 재정의한 ‘몰락’과 중세의 탄생
고대 후기 연구의 핵심 성과는 ‘로마의 몰락’이라는 개념을 재검토하게 만든 점이다. 고고학은 제국 제도의 붕괴와 사회 생활의 지속을 구분해 보여준다. 정치 권력은 해체되었지만, 로마적 생활 방식과 기술, 종교는 새로운 형태로 계승되었다. 기독교의 확산은 이 전환기의 중심 요소였다. 교회 건축과 묘지 구조의 변화는 종교가 사회 조직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중세 세계의 가치 체계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문명사적으로 고대 후기는 단절의 시대가 아니라, 고대와 중세가 겹쳐 존재한 중첩의 시대였다. 고전적 전통과 새로운 질서가 공존하며 점진적으로 균형을 바꾸어갔다. 고고학은 이 시기를 실패한 문명이 아니라, 재조정에 성공한 사회로 재평가한다. 변화는 축소였지만, 동시에 재구성이었다. 결론적으로 고대 후기에서 중세로의 전환은 로마 세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재탄생한 과정이었다. 고고학 연구는 이 시대를 통해 문명이 어떻게 자신을 해체하고 다시 조직하는지를 보여주며, 중세 유럽 사회의 기원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