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시성 시안 인근에 위치한 진시황릉의 병마용(兵馬俑)은 고대 국가가 권력을 어떻게 시각화하고 사후 세계까지 통제하려 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를 종결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한 진시황은 자신의 무덤에 수천 기의 병사·말·전차를 실물 크기로 배치함으로써 생전의 군사력과 통치 질서를 영원히 재현하고자 했다. 병마용은 단순한 장례 부속물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제국의 행정력·군사 조직·이데올로기가 집약된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이 글에서는 병마용의 제작 기술과 배치 체계, 진 제국의 권력 구조와 국가 운영 방식, 그리고 고고학 연구가 밝혀낸 통일 제국의 문명사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병마용의 제작 기술과 군사적 배치 체계
병마용은 현재까지 약 8,000기에 달하는 병사와 말, 전차가 확인된 대규모 지하 군진으로, 각 인물의 얼굴 표정과 머리 모양, 갑옷 형태가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놀라운 사실성을 보여준다. 이는 대량 생산과 개별적 마감이 결합된 고도의 제작 체계를 반영한다. 병마용은 머리, 몸통, 팔, 다리 등을 부분별로 제작한 뒤 조립하고, 최종적으로 세부를 다듬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이러한 공정은 국가 주도의 공방 시스템과 표준화된 제작 규격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재료는 주로 현지에서 채취한 점토였으며, 고온에서 소성해 강도를 확보했다. 일부 병마용에서는 채색 흔적이 남아 있어, 원래는 화려한 색채로 칠해졌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발굴 과정에서 색이 대부분 탈락했지만, 이는 병마용이 단순한 회색 조형물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군대의 재현이었음을 시사한다. 군사적 배치 역시 매우 체계적이다. 제1호 갱에는 보병과 전차가 혼합된 주력군이 배치되어 있고, 제2호 갱에는 기병과 궁수 등 특수 병과가, 제3호 갱에는 지휘부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위치한다. 이러한 구성은 실제 진나라 군대의 편제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병마용이 상징적 조형을 넘어 실전 군사 조직의 모형이었음을 보여준다. 무기 또한 중요한 단서다. 청동 검과 창, 화살촉 등은 크롬 처리 흔적이 확인되어, 산화 방지 기술이 적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진 제국의 금속 공예 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하며, 병마용이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당시 최첨단 군사 기술의 집합체였음을 보여준다.
진 제국의 엄격한 위계 질서와 사후 세계관
병마용은 진 제국의 권력 구조를 사후 세계로 확장한 상징적 장치였다. 진시황은 법가 사상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으며, 군사력은 통치 질서 유지의 핵심 수단이었다. 병마용의 존재는 황제가 죽음 이후에도 동일한 군사·행정 체계를 유지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사후 세계가 현세의 연장선으로 인식되었다. 무덤은 단순한 매장 공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제국이었고, 병마용은 그 제국을 방어하고 운영하는 실질적 구성 요소였다. 이는 조상 숭배와 내세관이 결합된 중국 고대 신앙의 특징을 반영한다. 사회 조직 측면에서도 병마용은 진 제국의 통치 방식을 보여준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인력이 동원된 무덤 조성 사업은 국가가 인력과 자원을 통제·배분할 수 있는 강력한 행정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기록에 따르면 병마용 제작에는 장인, 농민, 죄수 등이 동원되었으며, 이는 국가 프로젝트가 사회 전반을 관통했음을 시사한다. 병마용에 지휘관과 하급 병사가 명확히 구분되어 표현된 점은 엄격한 위계 질서를 강조한다. 이는 진 제국이 개인보다 역할과 규율을 중시한 국가였음을 보여주며, 통일 이후에도 이러한 질서가 사회 전반에 적용되었음을 암시한다.
병마용의 통일 제국 문헌적 실체 및 과학적 분석
병마용의 발견은 중국 고고학뿐 아니라 세계 고고학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유적은 문헌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진 제국의 실체를 물질 문화로 확인하게 해주었으며, 통일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권력과 이념을 구현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과학 분석은 병마용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점토 성분 분석과 제작 흔적 연구는 공방 간 분업 구조를 밝혀냈고, 인골과 무기 분석은 군사 조직과 사회 계층의 실체를 재구성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무덤 주변의 지질 조사와 환경 분석은 대규모 토목 공사가 주변 환경에 미친 영향까지 드러내고 있다. 문명사적으로 병마용은 ‘국가가 만든 이미지의 군대’라 할 수 있다. 이는 권력이 상징과 물질을 통해 기억을 조직하고, 통치를 영속화하려는 시도의 초기 사례다. 후대 한나라와 당나라의 황릉 제도에도 이러한 전통은 변형되어 계승되었다. 또한 병마용은 표준화와 대량 생산이라는 제국 운영의 핵심 원리를 보여준다. 동일한 규격 속에서 개별성을 허용한 제작 방식은, 법과 제도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면서도 실무적 유연성을 유지한 진 제국의 특징을 반영한다. 결론적으로 진시황릉 병마용은 통일 제국이 권력, 군사, 이념을 어떻게 통합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고고학 연구는 이 유적을 통해 국가 형성의 물질적 기반과 상징 정치의 기원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앞으로의 연구는 무덤 중심부의 미발굴 영역과 제작 조직의 세부 구조를 규명함으로써 진 제국의 통치 메커니즘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