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 자리한 하투샤(Hattusa)는 기원전 2천년기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로, 고대 근동 세계에서 보기 드문 체계적인 도시 계획과 방대한 문자 기록 문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대표적 유적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구조, 종교·행정·군사 공간의 분화, 그리고 수만 점에 달하는 점토판 문서의 출토는 히타이트가 단순한 군사 강국이 아니라 고도로 조직된 행정 국가였음을 입증한다. 특히 하투샤에서 발견된 외교 조약과 법률 문서는 국제 질서와 국가 운영 방식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하투샤의 도시 구조와 건축 기술, 히타이트의 기록·행정 체계, 그리고 고고학 연구가 밝혀낸 제국의 문명사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하투샤의 자연적인 지형과 방어 전략
하투샤는 자연 지형을 적극 활용해 설계된 요새 도시로, 험준한 바위 능선과 계곡을 따라 성벽과 관문이 배치되어 있다. 도시 전체는 상부 도시와 하부 도시로 구분되며, 각 구역은 행정·종교·주거 기능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화되어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히타이트가 도시를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정치 권력과 종교 질서를 구현하는 장치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하투샤 성벽은 길이 약 6km에 이르며, 석재 기초 위에 흙벽돌을 쌓은 복합 구조로 이루어졌다. 성벽 곳곳에는 망루와 관문이 설치되어 있었고, 대표적인 ‘사자의 문’, ‘왕의 문’은 조각 장식과 상징성을 통해 제국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사자의 문에 새겨진 부조는 도시 수호와 왕권의 신성함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도시 내부에는 신전 구역이 다수 분포해 있었으며, 그중 대사원(Great Temple)은 히타이트 판테온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신전과 창고, 제의 공간이 결합된 구조는 종교가 행정·경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신전 주변에서 발견된 대규모 저장 시설은 제의용 공물과 조세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주거 구역과 행정 구역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존재했으며, 도로망은 의례 행렬과 행정 이동을 고려해 설계되었다. 이러한 도시 계획은 히타이트가 공간을 통해 사회 질서와 권력 구조를 조직했음을 잘 보여준다.
점토판 기록과 히타이트의 행정 및 외교 성과
하투샤의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 중 하나는 수만 점에 달하는 점토판 문서의 발견이다. 이 문서들은 주로 아카드어 설형문자와 히타이트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법률, 외교 조약, 종교 의례, 신화, 행정 문서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히타이트 제국이 문자 기록을 국가 운영의 핵심 도구로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유명한 ‘카데시 조약’은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에 체결된 국제 평화 조약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외교 조약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문서는 하투샤에서 발견된 점토판과 이집트 신전의 비문을 통해 양측 기록이 모두 확인되어, 고대 국제 관계 연구의 핵심 자료가 되었다. 행정 문서들은 지방 통치, 세금 징수, 군수 물자 관리 등 제국 운영의 실질적 측면을 보여준다. 각 지역에서 보고된 문서는 중앙에서 검토·보관되었으며, 이는 히타이트가 분권적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강력한 중앙 행정 체계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종교 문서와 신화 기록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히타이트는 정복지의 신들을 포용하는 종교 정책을 펼쳤으며, 이는 점토판에 기록된 방대한 제의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이러한 기록 문화는 제국 통합을 위한 이념적 장치로 기능했다.
히타이트 제국 하투샤 발굴의 세계적인 언어적 영향
하투샤 발굴은 히타이트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사이에서 독자적 문명권을 형성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를 제공했다. 점토판 기록은 히타이트가 단순한 전쟁 국가가 아니라 법과 외교, 행정을 중시한 체계적 국가였음을 보여준다. 고고학자들은 도시 구조와 기록 자료를 결합해 히타이트의 통치 방식을 재구성하고 있다. 성벽과 관문은 군사적 방어를 넘어 의례적·상징적 경계를 형성했으며, 기록 보관소는 기억과 권력이 집중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는 문자 기록이 곧 국가 권력의 핵심 자산이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언어학적 연구는 히타이트어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어, 유라시아 언어사의 이해를 확장시켰다. 이는 하투샤 점토판이 단순한 역사 자료를 넘어 인류 언어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을 보여준다. 히타이트 제국의 붕괴 이후에도 하투샤의 기록 전통은 주변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조약과 법률 개념은 후대 근동 세계의 정치 문화에 계승되었다. 이는 히타이트 문명이 단절된 역사가 아니라 연속적 영향력을 지닌 문명임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하투샤와 점토판 기록 문화는 고대 국가가 어떻게 공간과 문자를 결합해 권력을 조직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사례이다. 고고학 연구는 히타이트 제국을 통해 행정·외교·종교가 결합된 초기 국제 질서의 모습을 밝혀내고 있으며, 앞으로의 연구는 기록 생산 과정과 도시 내부 기능을 더욱 정밀하게 규명함으로써 고대 국가 형성의 다양한 경로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