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배경과 주요 세력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유럽은 크고 작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그중 발트 해를 둘러싼 패권을 두고 벌어진 발트 전쟁, 또는 대북방 전쟁(Great Northern War, 1700~1721)은 북유럽 전체의 힘의 균형을 뒤흔든 대규모 분쟁이었다. 당시 북유럽은 스웨덴 제국의 황금기였다. 스웨덴은 17세기 중반부터 강력한 군사력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발트 해의 연안 국가들 대부분을 영향권 아래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스웨덴의 지배에 반감을 품은 이웃 국가들, 특히 러시아, 덴마크,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은 스웨덴의 패권을 견제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스웨덴의 국왕이었던 카를 12세는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군사적 재능과 과감한 전략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웃 국가들은 그를 과소평가하며 1700년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덴마크의 프레데릭 4세,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아우구스트 2세가 스웨덴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들은 스웨덴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초반에는 밀렸으나, 긴 전쟁 속에서 전략을 바꾸며 다시 세력을 규합해 나갔다.
전쟁의 주요 전개 과정
전쟁 초기에는 스웨덴이 명백히 우세했다. 1700년 나르바 전투에서 스웨덴군은 수적으로 압도적인 러시아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는 유럽을 놀라게 했고, 카를 12세의 명성을 크게 높였다. 이후 그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지역으로 진군하여 아우구스트 2세를 패배시키고 바르샤바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스웨덴은 점점 병력과 자원을 소모하게 되며, 전쟁이 장기화될 위험에 직면한다. 반면, 러시아는 패배 이후 군대를 재편하고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다. 표트르 대제는 전투에서 물러나는 대신 발트 해 연안에 새로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서구식 군사 훈련을 도입하며 러시아 군사력을 체계적으로 강화한다. 그리고 마침내 1709년 폴타바 전투에서 카를 12세의 스웨덴군을 결정적으로 격파한다. 이 전투는 대북방 전쟁의 전환점이자, 스웨덴 제국의 쇠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카를 12세는 패배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하며 재기를 꾀했으나, 돌아온 뒤에도 전세를 뒤집지 못했다. 결국 1718년 노르웨이 원정 중 전사하면서 스웨덴은 전략적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고, 전쟁은 1721년 러시아와의 뇌스탓 조약 체결로 막을 내렸다.
전쟁의 결과와 북유럽의 새로운 질서
대북방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북유럽 전체의 정치, 군사, 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가장 큰 변화는 러시아의 부상이다. 표트르 대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발트 해에 대한 출구를 확보하고, 러시아를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러시아는 동유럽과 북유럽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나간다. 반면, 스웨덴은 발트 해 연안의 여러 지역을 상실하고 군사적,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으며 제국의 지위를 잃었다. 스웨덴은 이후 중립국으로의 전환을 선택하며, 더 이상 유럽의 패권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된다. 덴마크와 폴란드 역시 제한적인 영토 이득을 얻었으나, 러시아처럼 눈에 띄는 패권 강국으로 부상하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발트 전쟁은 근대 러시아 제국의 출범과 스웨덴 제국의 종말을 의미했다. 전쟁의 상흔은 당시 유럽 국가들 간의 외교 및 동맹 구조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18세기 유럽에서 벌어지는 여러 전쟁과 혁명의 기초가 되었다. 특히 러시아의 성장세는 이후 나폴레옹 전쟁, 19세기 유럽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중심축으로 작용하게 된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국제정치와 지정학적 전략의 중요한 사례로 분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