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와 제국의 갈등
미국 독립전쟁은 18세기 후반, 북아메리카의 13개 영국 식민지가 본국인 영국과의 정치·경제적 갈등 끝에 독립을 선언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쟁을 벌인 역사적 사건이다. 갈등의 핵심은 식민지 주민들이 의회에 대표 없이 세금을 강제로 부과받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대표 없는 과세는 폭정이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라는 구호는 식민지인들의 분노를 집약한 표현이었다. 영국은 프렌치-인디언 전쟁(1754~1763)의 전후 처리와 막대한 전쟁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식민지에 설탕법, 인지세법, 차세법 등 여러 세금 정책을 시행했으며, 이는 식민지인들의 불만을 크게 자극했다. 보스턴 차 사건(1773년)은 이러한 불만이 폭발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급진적 저항 단체인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를 항구에 던져버림으로써 항의했고, 이에 격분한 영국 정부는 보스턴 항을 폐쇄하고 매사추세츠 식민지에 대한 자치를 제한하는 강경 조치를 내렸다. 이로 인해 다른 식민지들도 보스턴을 지지하며 연합의 필요성을 느꼈고, 제1차 대륙회의(1774년), 제2차 대륙회의(1775년)를 통해 본격적인 독립 논의가 시작되었다.
전쟁의 전개와 결정적 전투
1775년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벌어진 첫 충돌을 시작으로 미국 독립전쟁은 본격화되었다. 대륙회의는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대륙군을 조직했다. 초기에는 영국군의 강력한 군사력과 훈련에 밀려 열세에 놓였으나, 식민지인들의 높은 결의와 게릴라 전술,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원이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1776년 7월 4일, 토머스 제퍼슨이 주도해 작성된 미국 독립선언서가 발표되며 13개 식민지는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이 선언은 계몽주의 사상, 특히 존 로크의 자연권 이론에 영향을 받아,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정부는 국민의 동의로부터 정당성을 얻는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전쟁의 전환점은 1777년 세라토가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대륙군이 영국군을 격파하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강대국들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프랑스는 해군과 병력을 보내 미국을 직접 지원했고, 이는 영국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이어서 남부 전역에서 대륙군이 점차 우세를 점해갔고,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조지 워싱턴과 프랑스군이 연합해 영국군의 콘월리스 장군을 포위·항복시켰다. 이 승리는 사실상 전쟁의 종결을 의미했다.
전쟁의 결과와 역사적 의미
1783년 파리조약으로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공식 인정하고, 미시시피강 동쪽 지역 대부분을 미국에 양도했다. 이로써 세계 최초의 근대 공화국이 탄생하였으며, 미국은 이후 연방헌법(1787년) 제정을 통해 강력한 중앙정부와 법치에 기반한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갔다. 미국 독립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나 식민지의 반란을 넘어, 인류 역사에서 자유와 자치, 인권, 공화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혁명과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운동, 심지어 현대의 민주화 운동들에까지 영향을 미친 이 전쟁은, 국가 권력에 대한 시민의 권리와 저항의 정당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미국은 이후에도 이 독립정신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 오늘날까지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