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해방 전쟁에서 냉전 대리전으로 전환된 베트남의 역사
베트남 전쟁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제국주의 종식 이후 식민지 해방을 목표로 한 투쟁이 냉전의 세계질서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대리전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며 베트남 민족주의자들은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을 수립했으며, 호치민이 이끄는 공산주의 진영은 전국적 통일을 목표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맞선 남베트남은 미국의 지원 아래 비공산권 진영의 일원으로 형성되었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독재와 부패가 심각했다. 특히 제네바 협정 이후 남북 간 선거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갈등은 심화되었고, 북베트남은 남베트남 해방 민족전선(베트콩)을 지원하면서 본격적인 게릴라전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한다는 도미노 이론에 입각하여 군사적 개입을 결정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베트남 전쟁은 전 지구적 냉전 대립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미국의 직접 개입과 전면전 확대의 정치·전략적 배경
미국은 1950년대 후반까지 군사고문단 수준으로 남베트남을 지원하다가,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전면전을 결정하였다. 당시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 해군을 공격했다는 보고를 바탕으로 미국 의회는 통킹만 결의안을 통과시켜 대통령에게 군사 개입 권한을 부여했다. 이후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병력 파병을 확대하면서 베트남에 수십만 명의 미군이 투입되었고, 북베트남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 작전인 ‘롤링 썬더’ 작전도 개시되었다. 이 시기 미국은 전쟁을 빠르게 승리로 이끌기 위해 대규모 화력과 공군력을 동원했으나, 정글 지형에 능숙하고 지구전 경험이 많은 베트콩의 게릴라 전술에 고전하였다. 특히 하노이와 하이퐁 같은 북베트남의 주요 거점은 소련과 중국의 원조로 인해 전략적 거점으로 강화되었고, 미국의 일방적인 폭격은 오히려 민심을 잃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처럼 미국의 전면 개입은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압도 전략’이었으나, 베트남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과 민족주의적 저항 의식 앞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의 초기 양상과 국제사회의 반응
전쟁 초기 미국과 남베트남은 상대적으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베트콩은 전략적 유연성과 민중 기반의 게릴라전으로 효과적인 저항을 이어갔다. 지형적 특성과 현지인들의 협조를 바탕으로 한 터널망과 은신처, 비정규군 작전은 미군의 기계화된 병력에 큰 부담을 안겼고, 전쟁은 점점 장기전으로 전환되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 전쟁을 식민 잔재의 연장으로 보거나 냉전 대립의 대표적 사례로 해석하였다. 특히 소련과 중국은 북베트남을 무기와 병력, 기술 면에서 적극 지원하였으며, 이에 따라 미국은 전면전을 벌이면서도 직접 소련 및 중국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스러운 외교적 스탠스를 유지해야 했다. 유엔은 전쟁을 공식적으로 중재하지 못했고,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은 미국의 개입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러한 국제적 여론은 1970년대 초반 미국 내 반전 시위와 맞물리며 결국 전쟁 정책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베트남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냉전이라는 전 지구적 이념 전쟁의 미시적 전장이 되었고, 초기부터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