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시몬 드 보부아르의 존재론 - 여성이 되는 과정과 타자의 의미

by simplelifehub 2025. 8. 7.

시몬 드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페미니즘 사상의 전환점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장 폴 사르트르와의 지적 교류 속에서 실존주의 개념들을 여성의 삶과 젠더 억압에 적용하여, 철학과 정치, 문화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사유를 펼쳤다. 『제2의 성』에서 그녀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다”라는 명제로 유명한데, 이는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을 구분하는 개념의 철학적 출발점이 된다. 보부아르는 인간 존재를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구성해 나가는 실존적 주체’로 보았으며, 여성 역시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과정 속에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존재론은 단지 여성 억압의 현실을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자유와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시도다. 이를 통해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을 여성의 삶과 억압 구조에 적용한 최초의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는다.

여성은 ‘타자’로 만들어진다 - 주체성의 불균형

보부아르의 철학에서 핵심은 여성 억압이 단순한 권력 관계가 아니라 존재론적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녀는 서양 철학과 문명이 인간을 ‘보편적 주체’로 정의해왔지만, 실제로는 남성을 중심으로 한 주체 개념이었다고 비판한다. 여성은 항상 남성의 기준에 의해 ‘타자(the Other)’로 정의되었고, 이는 철학적 담론뿐 아니라 문화, 언어, 교육, 종교 등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구조적 시선이라는 것이다. 남성은 ‘자기 자신으로서의 존재’인 반면, 여성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존재하는 존재’로 위치 지워진다. 이 과정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자기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 인식하는 기회를 차단한다. 보부아르는 이러한 타자화가 억압의 핵심이며, 진정한 해방은 여성이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실존적 조건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처럼 그녀는 사회적 타자화를 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젠더 불평등을 단지 정치적 문제를 넘어 존재의 문제로 승화시킨다.

자유와 선택 - 여성 해방의 실존적 조건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의 전제를 여성 해방에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그녀는 인간은 고정된 본질 없이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존재이며, 여성 역시 이러한 실존적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고 보았다. 하지만 현실 속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조건에 의해 특정한 역할과 정체성으로 길들여지며,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제2의 성』에서 보부아르는 성장 과정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타인의 인정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지를 분석하며, 이를 실존의 왜곡으로 간주한다. 자유는 실존주의에서 핵심적인 가치이지만, 보부아르는 여성의 자유는 단순히 외적 제약을 넘는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억압 구조와 싸워야 함을 강조한다. 즉, 여성은 억압받는 현실을 인식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비로소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는 실존주의의 ‘자유는 책임이다’라는 원칙을 여성 경험에 적용한 철학적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실존의 새로운 가능성 - 연대와 창조의 철학

보부아르는 억압 구조를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여성이 새로운 실존의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그녀는 여성 해방이 단지 권리 확대나 제도 개혁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실존적 전환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보부아르는 교육, 노동, 창작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성은 타자의 위치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표현함으로써 실존적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다. 특히 문학과 예술은 여성이 억압된 언어와 상징 질서를 넘어 새로운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시된다. 보부아르는 연대를 통해 여성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사회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공동체적 실존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의 철학은 단지 개인 해방이 아니라 집단적 해방, 곧 새로운 인간성과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사유는 현대 페미니즘 담론뿐 아니라 철학, 문학, 사회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여성 존재의 본질과 그 해방의 과제를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