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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 장미 전쟁과 영국 귀족 사회의 붕괴

by simplelifehub 2025. 11. 8.

요크와 랭커스터의 왕위 계승 분쟁이 부른 내전

15세기 중반, 영국은 두 귀족 가문인 요크 가와 랭커스터 가문 간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인해 장기적인 내전 상태에 빠졌다. 이른바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으로 알려진 이 갈등은 1455년의 제1차 세인트올번스 전투를 시작으로 1487년 스토크필드 전투에 이르기까지 무려 30년 넘게 지속되었다. 양측은 각각 흰 장미(요크)와 붉은 장미(랭커스터)를 상징으로 내세워 귀족, 기사, 지역 영주들의 충성을 이끌어냈으며, 이로 인해 전 국토가 수많은 전투와 살육, 배신과 복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선 이 전쟁은 당시 영국 사회의 지배구조와 귀족 계급의 권력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사건이었다.

계속되는 전투와 배신 속에 귀족층이 무너진 내전의 양상

장미 전쟁은 전통적인 기사도 정신이나 정규 군사 체계와는 거리가 먼 양상을 보였다. 전투에 참여한 귀족들은 전세가 불리하면 곧바로 배신하거나 항복하고, 승리한 쪽은 상대 가문 전체를 숙청하거나 몰락시키는 잔혹한 보복을 서슴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토우턴 전투가 있으며, 이는 영국 역사상 가장 유혈이 낭자했던 전투로 기록된다.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가 승리하면서 랭커스터파의 대다수 귀족이 처형되거나 추방당했고, 전후 영지 몰수와 정치적 숙청이 대대적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중세 귀족 질서는 급격히 붕괴되었고, 잔존하던 봉건적 관계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한 귀족 간의 무자비한 투쟁은 결과적으로 왕권 강화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고, 영국 왕정은 전쟁 이후 전보다 훨씬 중앙집권적으로 재편되었다.

튜더 왕조의 성립과 근세 영국의 시작

장미 전쟁의 마지막 장은 1485년 보스워스 전투에서 튜더 가문의 헨리 튜더가 리처드 3세를 꺾으면서 시작된다. 이 전투는 단순한 전쟁의 종결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었다. 헨리는 헨리 7세로 즉위하면서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와 혼인하여 양 가문을 통합하였고, 장미 전쟁은 정치적 혼인을 통해 상징적으로 종결되었다. 이후 튜더 왕조는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를 배출하며 강력한 왕권과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였고, 영국은 봉건 사회를 넘어 근세 국가로 탈바꿈하게 된다. 장미 전쟁은 단순한 귀족 간의 왕위 다툼을 넘어, 영국 정치 구조의 전환을 촉발한 중대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 여파는 단지 전장의 승패에 그치지 않고, 헌법적 왕정과 의회 중심 정치라는 영국 특유의 정치 문화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