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동아시아의 권력 판도와 전쟁의 서막
19세기 말, 동아시아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그 기세를 몰아 한반도와 만주로의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었고, 러시아는 트랜스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극동지역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었다. 두 국가는 조선과 만주를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었으며, 특히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요동반도 점령이 삼국간섭으로 무산되면서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을 심화시켰다. 반면 러시아는 청으로부터 여순과 대련을 조차하면서 만주 남부에 군사적 거점을 마련하고, 조선 북부에도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방어하고 새로운 제국주의 질서를 주도하기 위해 무력 충돌을 감행하게 된다. 결국 1904년 2월 8일, 일본은 예고 없이 러시아의 포트 아서(여순항)를 기습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해상과 육상에서 펼쳐진 치열한 전투의 연속
러일전쟁은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국가가 유럽 열강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인 사례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일본군은 초반부터 선제적인 작전으로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여순항 전투에서는 일본 육군이 고지대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요새를 포위하고 맹렬히 공격했으며, 결국 수 개월의 격전 끝에 항구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해상에서는 1905년 5월, 쓰시마 해전이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일본 해군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지휘 아래 발틱 함대를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며,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이 전투는 전략적 기동력과 통신의 우위를 기반으로 한 전술적 승리였고, 세계적으로도 ‘해군 전술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중요한 전투로 평가된다. 러시아는 내정의 불안과 함께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했고, 결국 전쟁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중재로 1905년 포츠머스 조약 체결을 통해 마무리되었다. 이 조약에서 러시아는 남만주 철도, 사할린 남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하게 된다.
전쟁이 남긴 유산과 제국주의 시대의 전환점
러일전쟁은 단순한 양국 간 충돌을 넘어서 국제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먼저 일본은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였고, 서구 열강으로부터 공식적인 일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백인 제국을 무력으로 꺾은 사례로, 이는 이후 반식민지 국가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으며,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의 민족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반면 러시아는 전쟁의 패배로 인해 국내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었고, 1905년 러시아 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 또한 유럽 열강은 일본의 부상에 경계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동아시아 전략 구상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은 포츠머스 조약 이후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고, 1910년 강제 병합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전기를 맞게 된다. 요컨대 러일전쟁은 근대 동아시아 질서의 판도를 바꾼 전쟁이자,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맞부딪히는 전환기의 결정적인 분수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