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는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사상가 중 하나로, 특히 『차이와 반복』에서 제시한 존재론적 전회는 전통 형이상학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흔든 시도로 평가된다. 그는 서양 철학이 플라톤 이래로 동일성, 유사성, 정체성을 기준으로 세계를 이해해 왔다고 지적하며, 그 결과 모든 차이는 ‘같음의 정도’로 환원되었다고 비판한다. 들뢰즈는 이에 맞서 ‘차이 그 자체’를 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차이를 단지 비교나 분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존재를 생성하고 운동하게 하는 능동적 힘으로 본다. 동시에 반복 또한 단순한 동일한 것의 재현이 아니라, 매 순간 다른 국면을 생성하는 창조적 계기로 해석한다. 들뢰즈에게 있어 존재란 이미 주어진 형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차이를 생성하며 새로이 나타나는 과정이다. 『차이와 반복』은 이러한 사유의 방향 전환을 통해, 철학이 더 이상 고정된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고 구성되는 실재를 추적해야 한다는 요청을 담고 있다.
차이의 존재론 - 정체성보다 먼저 오는 생성의 힘
들뢰즈는 전통 철학이 ‘차이’를 ‘동일성에 대한 결핍’으로 간주해온 점을 비판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현실 세계의 사물은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사로 이해되며, 이로 인해 현실의 다양성과 특수성은 본질로부터의 거리로만 평가되었다. 들뢰즈는 이러한 위계 구조를 전복하고, 차이를 존재의 중심 개념으로 재정의한다. 그는 차이를 정체성에 종속된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를 생성하는 긍정적 힘으로 본다. 즉, 존재는 어떤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사건이다. 이는 ‘되기의 철학’이며, 고정된 본질 대신 과정과 운동을 철학의 핵심으로 삼는다. 들뢰즈는 이를 ‘차이의 철학’으로 정식화하고, 기존 철학이 미처 다루지 못한 실재의 역동성과 생성성을 포착하고자 한다. 그는 개념조차도 고정된 정의가 아니라 생성의 리듬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으며, 철학은 그 생성의 과정 자체를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존재론뿐만 아니라 미학, 정치, 윤리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연다.
반복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창조다
들뢰즈는 반복의 개념 또한 전복적으로 재해석한다. 우리는 흔히 반복을 동일한 것의 되풀이로 이해하지만, 들뢰즈는 반복을 통해 차이가 생성된다고 본다. 이는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과도 닿아 있으며, 반복은 단순한 순환이 아니라, 동일한 조건 속에서 다른 것을 생성해내는 힘이다. 그는 반복을 통해 나타나는 차이를 ‘차이 안의 반복’, ‘반복 안의 차이’로 구분하며, 반복이 단지 기계적인 반복이 아님을 강조한다. 반복은 주어진 의미를 강화하거나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의미를 탈구하고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운동이다. 이를 통해 들뢰즈는 예술과 사유, 존재와 주체의 형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예컨대, 예술작품은 이전의 형식을 반복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생성한다. 철학 역시 반복된 사유의 틀을 다시 사용하면서도, 다른 연결과 구성을 통해 새롭게 생성된다. 들뢰즈는 이처럼 반복을 창조의 계기로 이해함으로써, 전통의 모방과 재현 중심 사유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보았다. 반복은 단지 ‘다시’가 아니라 ‘다르게’이며, 이러한 반복을 통해 세계는 계속해서 새롭게 구성된다.
차이의 정치학과 윤리학 - 탈중심화된 관계 속에서의 주체
들뢰즈의 차이 철학은 단지 존재론에 머무르지 않고, 주체성과 정치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는 정체성에 기반한 동일한 주체가 아니라, 차이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되는 주체 개념을 제안한다. 이는 고정된 자아, 국가, 이념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나, 관계적이고 다중적인 주체성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들뢰즈는 권력의 중심화를 비판하고,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 서로 얽히고 분기하며 새로운 연대를 구성하는 탈중심화된 정치학을 제시한다. 이는 특히 푸코, 가타리와의 사유적 연대 속에서 ‘소수자의 정치’, ‘되기의 윤리’ 등으로 발전된다. 또한 들뢰즈의 사유는 기존의 윤리학처럼 보편적 원칙을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