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초기 경쟁과 토르데시야스 조약
15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이어진 대항해 시대는 단순한 탐험의 시기가 아니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유럽 강대국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 간의 치열한 경제적 이익과 군사적 영향력을 놓고 벌어진 무역 전쟁이자 식민지 패권 전쟁이었다. 이 과정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선도적 경쟁에서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동방 항로를 개척했고,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항해에 성공하면서 동양 무역의 패권을 노렸다. 이에 맞서 스페인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통해 서쪽으로 항해하여 신대륙에 도달했고, 이는 곧 양국 간의 충돌 가능성을 높였다. 이러한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체결되었고, 이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중재 아래 세계를 동서로 나누어 동쪽은 포르투갈, 서쪽은 스페인에 할당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유럽 외 다른 나라들에게는 무효나 다름없었고, 이후 등장한 네덜란드, 프랑스, 잉글랜드 등의 개입으로 대항해 시대의 무역 전쟁은 한층 더 격화되었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동인도회사와 상업 전쟁의 확산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신흥 해양 강국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 가운데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아시아 무역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네덜란드는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했고, 이는 당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막대한 군사력과 행정력을 보유한 준국가적 조직이었다. 인도네시아, 일본, 인도 등에서 무역 기지를 확보하고 포르투갈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아시아 무역의 주도권을 빠르게 장악했다. 이에 뒤질세라 잉글랜드도 1600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인도와 중국,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면서 네덜란드와의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특히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였던 말루쿠 제도(몰루카 제도)와 자바섬을 둘러싼 경쟁은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고, 이는 이후 양국 간의 네 차례에 걸친 영국-네덜란드 전쟁의 배경이 되었다. 이 무역 전쟁은 단순한 상업적 이해를 넘어서, 유럽 내 해상 패권과 제국주의적 야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국제적 분쟁이었다.
무역 전쟁의 군사화와 해상 패권의 변화
18세기 이후 무역 전쟁은 점차 군사화되었고, 이는 본격적인 식민지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18세기 중엽 프랑스와 영국은 인도, 북미, 카리브 해 등지에서 여러 차례의 전쟁을 벌였다. 1756년부터 1763년까지 벌어진 7년 전쟁은 사실상 첫 번째 세계 대전으로 평가받으며,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전 세계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쟁에서 영국은 프랑스를 격퇴하며 인도와 캐나다, 카리브 해의 주요 식민지를 확보했고, 이는 곧 영국 제국의 패권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무역 전쟁은 단순한 경제적 경쟁을 넘어 전 세계에 걸쳐 식민지를 둘러싼 대규모 군사 충돌로 발전했고, 해상 교역로를 장악한 국가가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국제 시스템이 형성되었다. 해상 무역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군함, 해군 전략, 항구 요새화 등의 기술도 급속히 발전했으며, 이는 제국주의 시대의 군사 전략과도 깊이 연결되었다. 대항해 시대의 무역 전쟁은 단지 상인들 간의 경쟁이 아닌, 국가 간의 군사적 충돌로까지 이어진 중요한 역사적 흐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