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무모한 계획, 바르바로사 작전의 개시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은 소련과 맺은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기습적으로 소련을 침공하였다. 이 작전은 ‘바르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이라 명명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큰 규모의 군사 작전으로 기록된다. 히틀러는 소련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무려 300만 명이 넘는 병력과 수천 대의 전차, 항공기를 동원하여 동부 전선을 형성하였다. 나치 독일은 북부 집단군이 레닌그라드, 중부 집단군이 모스크바, 남부 집단군이 우크라이나와 키예프를 목표로 진격하는 삼지창 전술을 채택하였다. 초기에는 기습 효과가 극대화되어 소련군은 큰 혼란에 빠졌고, 독일군은 빠른 속도로 소련의 깊숙한 내륙까지 진출했다. 이 작전은 독일의 번개전(blitzkrieg) 전략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예상보다 강한 저항과 지리적 한계, 보급 문제로 인해 전개가 꼬이기 시작했다.
소련의 반격과 독일군의 진창에 빠진 전선
초기엔 독일군이 승기를 잡았으나, 소련은 막대한 인명 피해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병력을 재편성하며 반격을 준비하였다. 특히 모스크바 전투는 독일군의 야망을 꺾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독일군은 겨울 전에 모스크바를 함락시키려 했으나, 가혹한 겨울과 길어진 보급선, 예상을 뛰어넘는 소련의 저항으로 인해 실패하였다. 겨울철 동상, 연료 부족, 전차와 차량의 고장 등으로 독일군은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반면, 소련은 시베리아 병력을 급파하며 반격을 개시했고, 전선은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1942년 이후 독일은 스탈린그라드, 쿠르스크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점차 밀리기 시작했고, 바르바로사 작전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이 작전은 히틀러의 과도한 자신감과 소련의 산업력 및 인적 자원의 저력을 과소평가한 결과였다.
전쟁의 판도를 바꾼 동부 전선의 대실패
바르바로사 작전은 단순한 군사 작전의 실패를 넘어, 전 세계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는 점에서 전쟁사적 의의가 크다. 독일이 소련을 짧은 시간 안에 굴복시키지 못하면서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동부 전선은 연합군에게 결정적인 전략적 시간을 벌어주었다. 또한 이 작전은 나치 독일이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증명하였다. 소련은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점차 독일군을 밀어냈고, 이후 연합군과 협공하며 베를린까지 진격하게 된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실패는 히틀러의 몰락을 가속화한 원인이며, 전후 냉전 질서의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단지 전술·전략적 차원을 넘어 역사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 작전을 계기로 소련의 전쟁수행능력, 산업력, 국토 방위 의지가 전 세계에 각인되었고, 이는 이후 동서 냉전 구도에서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전쟁사적으로 바르바로사 작전은 기습전의 한계, 보급과 계절 조건의 중요성, 대규모 전쟁에서의 전략적 계산 실수의 치명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