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카르타고와 로마의 필연적 충돌
기원전 3세기 지중해 세계는 로마와 카르타고라는 두 강대국이 양분하고 있었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지배한 신흥 세력이었고,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해상무역을 중심으로 서부 지중해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해상 제국이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며 시칠리아를 차지하고 카르타고에 큰 전쟁배상금을 부과하면서 양국의 대립은 격화되었다. 이에 대한 보복과 명예 회복을 위해 카르타고는 이베리아 반도 정복을 통해 새롭게 세력을 확장하였고, 그 중심에는 명장 한니발 바르카가 있었다. 한니발은 카르타고가 로마에 당한 굴욕을 씻고, 다시 지중해 패권을 회복하기 위해 전면전을 준비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피할 수 없는 충돌로 이어졌고, 고대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들을 남기게 되었다.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의 기습과 로마의 연전연패
기원전 218년, 한니발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출정하여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를 넘는 기상천외한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이 행군은 혹독한 자연환경과 적대 부족들의 방해 속에서도 강행되었으며, 그의 군대는 대규모 전력 손실을 입었지만 결국 이탈리아 북부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한니발은 트레비아 전투, 트라시메누스 호수 전투에서 로마군을 연이어 격파하였고, 로마 시민들 사이에는 공포가 확산되었다. 특히 기원전 216년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은 역사상 가장 완벽한 포위 섬멸전을 펼치며, 약 5만 명의 로마 병력을 괴멸시켰다. 이 전투는 군사전략사에서 고전으로 꼽히며, 한니발의 전술적 천재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남아 있다. 한니발은 이후에도 이탈리아 반도에 10년 이상 머물며 로마의 동맹 도시들을 이탈시키려 했지만, 로마는 집요하게 항전하며 전열을 재정비하였다. 카르타고는 한니발에게 충분한 병참 지원을 보내지 못했고, 이탈리아 원정은 점차 지구전 양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스키피오의 반격과 자마 전투의 승리, 카르타고의 몰락
로마는 전면적인 전략 전환을 시도하며, 젊은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중심으로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였다. 스키피오는 한니발이 이탈리아에 묶여 있는 틈을 타 이베리아에서 카르타고의 거점을 점령하고, 결국 아프리카 본토로 진격하였다. 이에 카르타고는 한니발을 본국으로 귀환시키게 되고,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양군은 마침내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이 전투에서 스키피오는 기병과 보병을 적절히 활용하여 한니발의 전차와 코끼리 전술을 무력화시켰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자마 전투의 패배는 카르타고에 치명타를 입혔고, 카르타고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함께 함대 해체, 외교권 제한 등 굴욕적인 평화 조건을 수락해야 했다. 이로써 제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완승으로 끝났으며, 로마는 지중해 세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니발은 전쟁 후에도 카르타고에서 개혁을 시도했지만 로마의 압력으로 망명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생을 마감했다. 이 전쟁은 고대 로마의 집요함과 전략적 유연성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세계사에 길이 남을 전쟁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