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시대에 역사를 정리하려는 의지가 편찬을 이끌었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인 1145년에 김부식과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한국 고대사 최초의 정사(正史)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를 정리하여 후대에 남기기 위한 목적에서 작성되었으며, 특히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 고려 왕조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 고려는 북방의 여진족 세력과의 갈등, 문벌 귀족 간의 권력 투쟁, 불교 중심의 신앙과 유교 정치 이념의 충돌 등으로 인해 복잡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김부식은 유교적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통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으며, 그 수단으로 고대사의 체계적 정리를 추진하였다. 따라서 『삼국사기』는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고려 지식인들이 바라본 이상적 국가상과 역사관을 반영한 이념적 결과물로 읽을 수 있다.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역사 서술은 정치적 목적과도 연결되었다
『삼국사기』의 서술 방식은 유교적 역사관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사서의 편년체 구성 또한 중국 정사(正史)의 전통을 모범 삼아 정리되었다. 김부식은 신라 출신의 문벌 귀족으로, 신라 중심의 정통론을 강조하면서도 유교적 덕치주의와 충효를 역사 서술의 핵심 가치로 삼았다. 이로 인해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서술은 상대적으로 간략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며, 신라의 통일을 중심으로 삼국의 역사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삼국사기』는 신화나 전설보다는 사실에 입각한 정치·군사 사건 위주의 기록을 선호했으며, 이는 고려 정부가 안정적인 왕조 이념을 구축하고자 한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역사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통치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도구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삼국사기』의 편찬은 당대의 정치 이념을 뒷받침하는 실천적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서는 사료적 가치뿐 아니라, 고려 시대 지식인들이 현실 정치와 역사를 어떻게 연결지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고려 지식인의 역사 의식은 삼국사기에 담긴 이념적 기획에서도 드러난다
『삼국사기』를 통해 고려 지식인들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당시의 사회 질서를 정당화하고 미래의 통치 방향을 제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김부식은 유교적 교양을 갖춘 문신이자 관료였으며, 그가 주도한 편찬 작업은 단순한 학문적 관심이 아닌, 왕조의 통치 이념과 국가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정치적 기획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삼국사기』는 고려라는 새로운 통일 국가가 신라의 유산을 계승했음을 강조함으로써 당시의 정치 권위를 뒷받침하려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시에 불교적 세계관에 의해 구성되었던 기존의 신화적 역사 서술과는 달리, 『삼국사기』는 유교적 질서와 합리성을 강조함으로써 통치 이데올로기의 변화도 보여준다. 이처럼 『삼국사기』는 단순한 사료집이 아니라, 고려 지식인들의 역사 인식과 이념적 지향, 그리고 정치적 현실 대응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는 지식 생산의 산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삼국시대의 사실을 넘어서, 고려 중기라는 특정 시대가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했는지를 생생히 엿볼 수 있으며, 이는 한국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