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벌귀족 체제의 붕괴와 무신정권의 등장은 시대적 필연이었다
고려 중기까지는 문벌귀족 중심의 정치체제가 확립되어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체제는 점차 내적 모순과 외적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숙종 이후로 이어지는 왕권의 약화와 귀족 간의 권력 다툼은 국정의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민생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이 시기에 관료 체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받던 무신 세력은 점차 불만을 축적하게 되었고, 무신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1170년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무신정변으로 폭발하였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정변이 아닌, 고려 정치 권력의 중심축이 문신에서 무신으로 이동하는 대전환이었다. 무신정변 이후 형식적으로는 왕이 존재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무신 집단에게 집중되었으며, 이는 곧 무신정권이라는 독자적인 정치 체제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초기 무신정권은 반문신적 성격이 강했고, 전통적인 문벌귀족 중심의 정치문화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으나, 시간이 지나며 무신 내부의 세력 다툼 또한 심화되어 새로운 권력 구조의 안정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신정권은 향후 백 년 가까운 기간 동안 고려 정치의 주체로 군림하며, 고려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게 된다.
최씨 정권의 군사 기반 통치는 고려 무신정권의 정점이었다
무신정권 초기는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등 다양한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교체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정치적 안정은 요원했다. 이러한 불안정한 권력 구조는 결국 최충헌이라는 걸출한 무신의 등장으로 재편되었다. 최충헌은 단순한 군사적 강제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교정도감이라는 별도의 정치기구를 설치함으로써 체계적인 정권 운영을 시도하였으며, 이후 그의 아들 최우에 이르러서는 무신정권의 정점에 달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통치는 '최씨 정권'이라고도 불리며, 고려왕조의 이름을 유지한 채 실질적인 권력은 최씨 일가에 귀속되는 이중 권력 구조가 형성되었다. 최씨 정권은 사병 집단인 도방과 삼별초를 중심으로 군사력을 장악하였으며, 이를 통해 내란은 물론 외적 침입에 대한 방어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였다. 최우는 문신들과의 타협을 시도하고, 과거제를 운영하는 등 최소한의 문민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였으나, 본질적으로는 군사력에 기반한 정권이었기에 그 한계는 분명했다. 특히 최항, 최의로 이어지는 후계 구도는 점차 사적 권력화가 강화되었고, 이는 무신정권의 내부 균열과 몰락을 재촉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씨 정권은 무신정권 체제의 정점으로, 고려사에서 군사 권력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특이한 사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무신정권은 농민과 천민 반란을 촉발시키는 사회 구조적 긴장의 원인이 되었다
무신정권은 정치 권력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고려 사회 전반의 계층 질서와 민중 의식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신정권 하에서는 지방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지고, 권력층의 수탈이 심화되면서 농민과 천민 계층의 불만이 누적되었다. 특히 과중한 세금과 부역, 무신들의 사병 동원 등으로 인한 고통은 민중의 삶을 파탄으로 몰아넣었고, 이는 각지에서 반란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망이·망소이의 난, 김사미·효심의 난, 만적의 난 등이 잇따라 발생하였으며, 이는 무신정권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만적의 난은 고려 사회에서 천민 출신이 신분 질서의 전복을 기도한 사례로, 단순한 반란 이상의 사회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민중 봉기는 기존의 유교적 질서와 문벌 중심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였으며, 무신정권이 무력으로만 정권을 유지하는 한계 또한 드러내는 사건들이었다. 이처럼 무신정권은 한편으로는 군사적 안정을 제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생의 파탄과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켰고, 이는 고려 후기로 갈수록 더욱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연결된다. 결국 무신정권은 고려의 중세적 정치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한 시기였지만, 그 통치는 일시적인 안정 속에 사회 구조적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