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도가사상을 계승하면서도 노자와는 또 다른 독특한 철학세계를 펼친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인위적 구분과 제도, 규범, 언어체계를 철저히 해체하고, 그것을 넘어선 존재방식으로서의 '자유'를 철학의 핵심에 두었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자유란 단순히 외부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차원을 넘어서, 고정된 가치 판단과 언어의 틀조차 초월하는 무위자연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삶을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내려놓고, 존재 그 자체로 흐르며 살아가는 방식과 깊이 맞닿아 있다. 장자는 이러한 사상을 풍부한 우화와 비유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철학적 사유의 여백을 제공한다. 본 글에서는 장자의 자유 개념이 어떻게 언어와 제도를 넘어서는지를 중심으로 그의 사유 구조를 분석하고자 한다.
제도와 분별은 자유를 가로막는 인위의 산물이다
장자는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나 질서, 명분이나 정의, 선악의 구분 자체를 깊이 의심했다. 『장자』에는 ‘대신의 깃털은 장식이 되지만, 새의 입장에서는 거추장스럽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어떤 것이 인간 세계에서는 가치 있게 여겨질지라도, 자연의 질서에 있어서는 불필요하거나 해롭기조차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명확히 구분지으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식으로 구획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귀하고 천한 것들은 결국 인간이 만든 인위적 분별이며, 그런 구분은 인간을 끊임없이 판단과 갈등 속으로 몰아넣는다. 장자가 추구한 자유는 바로 이러한 분별과 제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유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세운 틀마저도 허물고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장자에게 있어 도(道)란 그런 자유의 근거이며, 그것은 어느 하나의 형식으로도 포착되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언어는 도를 담기엔 너무 좁고 고정적이다
장자는 언어의 한계를 일찍이 인식했다. 그는 '말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하며, 이름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을 붙이려 한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그는 노자의 언어비판과도 맥을 같이 하지만, 더 근본적인 회의주의로 나아간다. 『장자』의 여러 편에서는 논쟁의 무의미함과 언어가 얼마나 실체를 왜곡하는지를 꼬집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회남자와 북해약'의 대화를 보면, 각자의 입장에서 아무리 논리를 세우고 주장을 해도 결국 서로의 존재방식과 관점을 바꿀 수는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언어는 정형화된 틀을 만들어 현실을 고정시키며, 인간은 그 틀 안에서 갇힌 채 살아간다. 장자는 이런 언어의 틀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자유로운 유희적 언어, 즉 우화와 허구, 역설과 침묵을 통해 오히려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것이다. 언어의 집을 떠나 도를 느끼는 그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의 감각을 맛볼 수 있다.
무용지용 - 쓸모없음이야말로 진정한 쓸모다
장자의 철학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개념은 '무용지용(無用之用)'이다. 이것은 겉보기엔 쓸모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 쓸모없음 덕분에 살아남고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적 통찰을 담고 있다. 『장자』에서는 굽은 나무가 목재로 쓸 수 없다는 이유로 베이지 않아 결국 산속에서 오래 살아남는 비유가 등장한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깎고 다듬는 삶보다는, 겉으로 보기엔 쓸모없지만 본래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삶이 더 자유롭고 자연에 부합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장자는 인간이 사회의 기준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평가받는 것을 경계했다. 오히려 무위(無爲)의 삶, 즉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삶이야말로 가장 도에 가까운 삶이라 보았다. 진정한 자유는 그런 쓸모없음 속에 숨어 있고, 인간은 거기서 비로소 타인의 욕망과 판단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에 안주할 수 있다. 결국 장자는 '되는 삶'이 아닌 '그대로 있는 삶'을 철학의 지향점으로 제시하며, 이를 통해 존재론적 자유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