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질문에 둘러싸인다. 그중에서도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질문은 단지 사물의 유무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와 그 안에서의 자아, 본질, 변화, 시간, 공간 등 모든 것의 근거를 탐색하게 만든다. 존재론은 이러한 물음을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이며,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를 존재하는 것 자체로 사유하며 형이상학을 열었고, 하이데거는 존재 망각의 시대를 성찰하며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재조명했다. 존재에 대한 탐구는 단지 추상적인 개념놀음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정립하며 타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과도 깊이 연결된다. 이 글에서는 고대와 중세의 존재론적 사유, 근대철학의 존재 재정립, 그리고 현대철학이 던지는 존재의 물음까지 차례로 살펴보며 철학의 핵심인 ‘존재’에 대한 사유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형이상학은 존재의 본질을 물었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초월적 실재를 통해 존재를 설명하고자 했고,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개별 사물들의 본질에서 존재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형이상학』에서 존재를 존재로서 탐구하며, 존재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존재의 다의성은 이후 중세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을 '필연적 존재'로 규정하며 존재론과 신학을 결합시켰다. 중세의 형이상학은 존재를 신의 질서와 계획 안에서 이해하고자 하며, 존재를 하나의 계층 구조 속에서 배열하였다. 이처럼 고대와 중세의 존재 사유는 존재를 어떤 본질, 목적, 질서로 환원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존재를 둘러싼 질문은 곧 세계에 대한 신적 설명으로 이어졌다. 이는 이후 근대철학자들이 ‘존재’라는 개념을 보다 인간 중심의 사유로 재정립하려는 배경이 되었다.
근대 철학은 인간 중심의 존재론을 재구성했다
근대에 이르러 존재론은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로 존재의 근거를 자아의 인식에서 찾았고, 스피노자는 모든 존재를 하나의 실체로서의 신으로 동일시하면서도 자연을 통해 신을 이해하려는 범신론적 관점을 제시했다. 라이프니츠는 존재를 모나드라는 독립된 단위로 설명하며 복잡한 세계를 단순화하려 했고, 칸트는 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를 지적하며 존재를 경험의 범위 내에서만 다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근대철학자들은 존재를 무한하고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 이성의 작용과 경험을 통해 규정지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는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잊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고, 존재를 인식이나 주관의 그림자로 환원시키는 경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하이데거와 같은 현대철학자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하이데거와 현대 존재론은 존재 자체의 물음을 다시 열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에 대한 철학이 너무 오래 본질적 질문을 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존재를 특정한 사물의 속성이나 개념으로 환원하는 기존의 형이상학을 비판하며, 존재 그 자체가 시간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로 명명하며, 존재를 물음으로 여기는 존재, 즉 존재에 대해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인간을 위치시켰다. 이는 존재론을 단순한 사물의 구조 분석이 아닌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 속에서 재정립한 것이다. 현대에 와서 존재론은 단지 존재하는 것의 목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존재가 어떻게 드러나는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집중한다. 장 뤽 낭시, 알랭 바디우, 퀀틴 메이야수와 같은 철학자들은 존재의 비결정성, 시간성과 사건성에 주목하면서, 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열리는 가능성으로 이해하려 한다. 이렇게 보면 존재론은 더 이상 형이상학의 영역에 갇힌 철학이 아니라, 오늘날 인간 존재의 조건을 성찰하고 변화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사유틀로 자리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