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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윤리 사이의 긴장 - 홉스와 루소의 인간 본성에 대한 대비

by simplelifehub 2025. 9. 23.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인가, 아니면 공동체적 존재인가? 이 질문은 고대부터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탐구해온 문제이며, 정치철학과 윤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주제 중 하나다. 특히 근대 정치철학의 두 거장인 토마스 홉스와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본성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사회계약론을 제시했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로 묘사하며, 생존을 위한 경쟁과 폭력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보았다. 반면 루소는 인간이 본래 평화롭고 자애로운 존재였으며, 사회와 사유재산의 출현이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서는 두 철학자의 인간 본성론을 중심으로, 생존과 윤리 사이의 긴장이 어떻게 철학적 체계 속에서 드러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홉스의 자연 상태 - 불신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

토마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은 철저히 이기적이며, 생존을 위해 타인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홉스에 따르면 자연 상태란 사회적 계약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하며, 이 상태에서 인간은 법과 도덕의 구속 없이 오로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행동한다. 이러한 상태는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귀결되며, 인간은 타인에 대해 신뢰할 수 없기에 끝없는 갈등과 전쟁이 반복된다고 본다. 따라서 홉스는 인간이 서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통치자, 즉 주권자에게 권리를 위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회계약론은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전제 위에서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설명하며, 윤리는 강력한 법과 질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현실주의적 시각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정치철학에서도 질서와 안보를 강조하는 실용주의적 입장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루소의 자연 상태 - 타락 이전의 순수한 인간

루소는 홉스와 정반대의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며, 자신의 생존을 넘어서 타인을 해치려는 의도가 없다고 주장한다. 루소에 따르면 원시 인간은 소박한 욕구만을 지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였으며, 사유재산과 사회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인간은 비교와 질투, 경쟁의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문명의 발전이 인간을 타락시켰으며, 참된 윤리는 오히려 자연 상태에 가까운 공동체적 삶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루소는 '일반의지' 개념을 통해 공동체의 공공선을 실현하는 것이 윤리적 삶의 핵심이라고 보았고, 이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조화와 연대를 중시하는 시각이다. 루소의 관점은 현대 복지국가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인 신념이 시민 교육과 도덕 형성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

두 관점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홉스와 루소의 대비는 단순히 철학적 입장의 차이를 넘어서,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사회제도와 윤리적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홉스의 이론은 인간의 약점을 전제로 강력한 법과 질서가 사회를 지탱해야 한다고 보며, 루소는 인간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공동체 안에서의 도덕적 교육과 자율적 참여를 통해 윤리가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 두 입장을 모두 필요로 하는 복합적 상황에 처해 있다. 범죄와 테러가 난무하는 사회에서는 홉스적 질서가 절실하며, 동시에 시민의 자율성과 도덕적 성숙 없이는 루소적 공동체 정신이 실현되기 어렵다. 윤리와 생존 사이의 균형, 권위와 자유 사이의 조화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철학은 이 양극단을 사고의 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긴장을 끊임없이 조율하며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묻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단지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존재이며, 철학은 그 고민의 여정에 가장 깊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