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이며, 우리는 스마트폰, 인터넷, 인공지능 등으로 대표되는 기술적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기술이 지닌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기술을 단순히 인간의 도구적 산물로 보지 않고,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해했다. 그는 기술이 우리 존재방식과 세계 경험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그의 저작 『기술에 대한 물음』에서 기술은 단순히 수단이나 기계가 아닌, 세계를 ‘도전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방식(Ge-stell)’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세계를 효율성과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원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 인해 존재의 다채로운 의미가 축소되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약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이데거의 기술 철학은 현대 문명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지며, 기술에 의해 형성된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더 근본적인 존재성과 마주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단지 인간이 만든 수단이나 장치로 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기술을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 다시 말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만나는 특정한 방식으로 간주했다. 전통적으로 기술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하이데거는 이와 같은 도구적 개념은 기술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 기술은 세계를 ‘자원’으로 바라보도록 만들고, 모든 존재를 효율성과 생산성의 관점에서 평가하게 만든다. 이는 세계를 대상화하고, 인간의 존재 또한 수단적 사고에 예속시킨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Ge-stell(게슈텔)’은 이러한 기술적 세계관의 구조를 나타내며, 인간은 이 구조 안에서 세계를 끊임없이 조작하고 통제하려는 존재로 변모하게 된다. 결국 기술은 단순한 외부의 물체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 존재방식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태도와 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기술 자체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자세를 묻게 한다.
Ge-stell과 존재 망각의 위험
하이데거의 기술 철학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Ge-stell(게슈텔)’이다. 이는 세계를 도전적으로 드러내게 만드는 틀, 즉 존재를 특정 방식으로 보이게 만드는 구조를 의미한다. 기술적 사고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가공하고 변형 가능한 자원으로 간주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심이나 근본적인 물음을 망각하게 되며, 하이데거는 이를 ‘존재 망각(Seinsvergessenheit)’이라고 불렀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 효율이라는 기준에 맞춰 존재를 왜곡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성의 소외를 초래하고, 인간조차도 자원으로 치환되는 위험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인간 노동력이 ‘인적 자원’이라는 용어로 표현될 때, 인간은 더 이상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효율성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흐름을 비판하며, 존재와의 근본적인 관계 회복을 촉구했다. 기술 비판은 단순히 기술 개발을 멈추자는 의미가 아니라, 기술적 사유에 예속된 인간 인식을 다시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리자는 철학적 제안이다.
시와 예술, 그리고 존재의 회복
하이데거는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존재에 대한 진정한 사유를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술’에서 찾는다. 특히 그는 ‘시’를 통해 존재가 기술적 틀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보았다. 시인은 존재를 규정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열어주는 존재다. 예술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기술적 세계관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와 만나는 길을 열어준다. 그는 예술이 ‘진리의 파열(Truth as Aletheia)’을 드러내는 장이라고 보았으며, 기술이 가리는 존재의 빛을 예술을 통해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술은 존재를 대상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과 함께 머무르는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이러한 예술적 사유는 하이데거 철학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며, 기술적 세계 속에서도 존재의 본래적 진리를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이데거의 기술 비판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기술의 지배를 넘어서는 새로운 존재 방식의 가능성을 여는 근본적 사유의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