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는 철학사에서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자연주의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핵심 사상은 “신=자연(God or Nature)”이라는 급진적인 테제로 요약된다. 이 관점에서 신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 자체이며, 세계는 신의 표현이자 필연적 결과로서 존재한다. 모든 사물과 현상은 일정한 원인에 따라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우연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일 뿐이다. 이러한 결정론적 세계관은 인간의 자유의지마저도 재해석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무수한 원인들에 의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통찰은 인간 존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필연성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내적인 평온과 윤리적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들을 하나의 실체가 가지는 서로 다른 양상으로 보았다. 그 실체가 바로 신이며, 곧 자연이다. 이 세계는 무한하고 자기 원인을 지닌 실체로서 신의 필연적 전개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어떤 원인에 의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했고, 달리 될 수 없었다. 이 개념은 현대 과학의 인과율 개념과도 연결된다. 자연의 법칙은 절대적이며, 우주는 수학적 질서 속에 움직인다. 스피노자는 이처럼 철저한 결정론의 시각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한다고 느끼는 순간조차, 그 선택은 앞선 원인들의 복합적 결과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이해는 인간 존재를 작게 만들기보다, 세계를 더욱 심오하게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우주의 거대한 질서 속에서 하나의 표현이자 연속된 흐름의 일부임을 자각하게 된다.
진정한 자유는 필연성을 아는 것이다
스피노자 철학의 백미는 바로 자유에 대한 독특한 정의다. 보통 자유는 외부로부터의 간섭이 없는 상태, 혹은 자율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 진정한 자유란, 외부 원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연성을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감정과 욕망에서 해방되는 상태다. 예를 들어, 어떤 감정이 내 안에서 생길 때 그 감정의 원인을 명확히 이해하고 인식하게 되면, 그 감정은 나를 휘두르지 못한다. 이는 스토아 철학의 정념에 대한 태도와도 유사하다. 또한 이 점은 현대 심리학에서도 받아들여지는 관점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감정의 원인을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감정 조절 능력이 뛰어나다. 스피노자의 자유는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자유인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말고는.” 이는 삶의 필연성을 받아들이고, 감정과 죽음조차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진정한 평정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필연성을 자각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의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다.
결정론은 인간 삶의 윤리적 기반이 될 수 있다
결정론적 세계관은 때로 인간의 도덕과 책임을 부정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스피노자 철학은 오히려 윤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간이 감정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면, 윤리란 단지 이상적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인간이 감정의 원인을 이해하고, 그것을 지성의 힘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윤리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된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지성을 통해 욕망을 변형시키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자유를 지지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본다. 그는 이것을 ‘공통 이성(common reas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자연의 질서를 이해할 뿐 아니라,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자신의 것처럼 존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스피노자의 결정론은 파괴적 세계관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능력을 신뢰하며, 감정에 흔들리는 인간을 연민하면서도 이성으로 인도하려는 철학이다. 우리가 세상의 질서를 인정하고, 그 질서에 맞춰 자기 삶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철학이 추구하는 가장 실질적인 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