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는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중심 인물로서, 인간 존재를 본질이 아닌 '실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이 신에 의해 설계되지 않았고, 인간의 본질 또한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는 유명한 명제로 요약되며, 이는 곧 인간은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에 자기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사르트르는 이로 인해 인간이 철저히 자유로운 존재라고 보았지만, 동시에 그 자유가 무겁고 고통스럽다고도 말한다. 인간은 아무런 본질적 지침 없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설계해야 하며, 이 선택의 무게는 불안과 책임을 수반한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존재와 무』, 『구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등을 통해 실존주의가 단순한 비관주의나 냉소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과 윤리를 가장 깊이 사유하는 철학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르트르의 철학은 전후 유럽 사회의 허무주의를 넘어서고자 한 지적 실천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자유의 철학’으로 평가받는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인간이 무엇을 뜻하는가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재정의를 담고 있다. 전통 형이상학이나 신학은 인간의 본질, 즉 인간다움의 정의가 선행하고, 그에 따라 인간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무신론적 전제 위에서, 인간은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으며, 어떤 고정된 본질도 없이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간다고 본다. 즉, 인간은 무엇이 되기로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구성하는 존재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우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유는 더 이상 특권이 아니라, 회피할 수 없는 존재 조건이며, 이로 인해 인간은 ‘버려진 존재’로서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사르트르는 이 불안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윤리적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인간이 자기 기만이나 사회적 규범에 안주하지 않고, 진정한 자유의식을 자각할 때 비로소 주체적인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무거운 책임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유롭다고 보았지만, 이는 단순한 해방이나 쾌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철학에서 자유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는 고통스러운 의무이며, 이 때문에 자유는 형벌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 행동이 만들어내는 세계와 타인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아니라, 철저한 윤리적 책임의 철학이다. 그는 “타인 앞에서 나는 내 행동의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모든 선택은 단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하나의 선언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회피보다는 책임, 방관보다는 실천, 자기기만보다는 진정성을 강조하며, 이는 정치적 행동과 사회참여의 철학적 기초가 되기도 한다. 사르트르에게 자유는 도망칠 수 없는 조건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오직 각자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 자유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성취되는 윤리적 행위이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실존은 시험된다
사르트르는 인간 존재가 고립된 자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타자의 시선 속에서 규정되고 변화한다고 본다. 그는 『존재와 무』에서 ‘타자의 시선(le regard)’이라는 개념을 통해,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타자의 시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즉, 나는 내가 누구인가를 타자의 시선을 통해 의식하게 되며, 이는 곧 자유와 주체성의 긴장을 낳는다. 타자의 시선은 나를 대상화하며,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만드는 동시에, 나를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는 힘이 된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 인간의 실존은 항상 갈등과 마주한다고 보았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재확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타자를 배제하는 자기 완결의 철학이 아니라, 타자 속에서 자신의 자유를 성찰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철학이다. 인간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가운데 자신의 자유를 성숙시킬 수 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개인적 구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깊이 있게 사유하는 철학으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