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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시계태엽 - 베르그송의 시간 개념과 철학적 반란

by simplelifehub 2025. 9. 11.

앙리 베르그송은 20세기 초 프랑스 철학계에서 독특한 사유의 흐름을 만들어낸 철학자다. 그는 시간과 의식에 대한 기존의 기계적, 수학적 접근을 비판하며 '지속(durée)'이라는 개념을 통해 전혀 다른 시간 이해 방식을 제시했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데카르트와 뉴턴으로부터 이어진 정량적이고 추상적인 시간 개념을 넘어, 살아있는 존재의 내면에서 흐르는 '질적 시간'을 중심에 둔다. 이 글에서는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을 중심으로 그의 시간 철학이 인간의 의식, 자유의지, 그리고 창조적 진화와 어떤 관련을 맺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계의 시간과 의식의 시간은 다르다

베르그송은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시간 개념이 본질적으로 왜곡된 것이라 본다. 시계가 표시하는 시간은 균등하게 나뉜 공간적 단위로, 측정 가능한 '수학적 시간'이다. 이는 물리학과 일상 속에서 유용하지만, 인간의 내면에서 경험되는 시간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의 의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서로 다른 감정과 기억이 중첩되는 복잡한 흐름 속에 존재한다. 이 흐름이 바로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durée)'이다. 지속은 연속되며, 되돌릴 수 없고, 질적인 차이를 지닌다. 그는 이러한 지속을 이해하려면 지성(intellect)이 아니라 직관(intuition)의 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시간은 측정하고 분석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내고 느껴야 할 것이다.

지속의 시간은 자유와 창조의 조건이 된다

베르그송의 시간 개념은 인간의 자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기계적 시간 개념은 인과율에 지배되어 있어 인간의 선택과 행동이 예측 가능한 인과의 사슬로 환원된다. 그러나 지속 속의 시간은 각 순간이 고유하고 이전과는 다른 질적인 변화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시간 안에서는 인간은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주체가 된다. 이로 인해 인간의 자유의지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자기 창조의 과정이다. 베르그송은 이 개념을 '창조적 진화'라는 개념으로 확장했다. 모든 생명체는 기계적 원리나 목적론에 따라 진화하지 않으며, 예측할 수 없는 창조성을 바탕으로 생의 흐름을 따라 진화해간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는 기존의 결정론을 넘어서는 강력한 철학적 반란이자, 삶과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직관은 지성보다 더 깊이 존재를 꿰뚫는다

베르그송 철학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인식의 방식이다. 그는 인간의 지성이란 본래 고정된 대상과 반복 가능한 개념을 다루도록 진화한 도구라고 보았다. 그러나 지속처럼 흐르고 변화하는 대상을 파악하기에는 지성은 너무나도 부적합하다. 따라서 그는 직관이라는 인식 방식을 통해 지속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관은 대상을 외부에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 안으로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되어 체험하는 것이다. 이는 예술가가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는 방식과 유사하며, 존재의 깊은 층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감각이다. 베르그송은 이러한 직관적 사유를 통해 철학이 인간 삶의 내면과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이후 메를로퐁티,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현대철학의 '몸', '의식의 흐름', '실존적 시간성' 같은 주제를 여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