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시대와 사상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논쟁의 중심에 있어 왔다. 진리를 단일하고 불변하는 것으로 보는 절대주의와, 맥락과 관점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보는 상대주의는 철학사 전반에 걸쳐 첨예하게 대립해 온 두 흐름이다. 진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지식, 도덕, 사회 구조에 대한 태도 역시 달라진다. 이 글에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진리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검토하고, 절대주의와 상대주의가 각각 어떤 철학적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탐색한다. 나아가 두 입장을 극복하려는 현대 철학의 시도와, 진리에 대한 보다 유연하면서도 책임 있는 이해 가능성에 대해 사유해본다.
절대주의적 진리관의 기원과 한계
진리에 대한 절대주의적 입장은 고대 철학자 플라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데아 세계에 존재하는 진리는 감각적 세계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의 이성을 통해 인식될 수 있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를 신의 섭리로 해석하면서 영원불변한 진리 개념을 신학적으로 강화했고, 데카르트는 이성적 사유를 통해 확실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절대주의는 근대 과학과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인간 중심의 보편 진리 탐구로 이어졌으나,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해석의 차이 앞에서 점차 그 보편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특히 니체는 절대적 진리는 허구에 불과하며, 진리는 단지 권력의 도구일 뿐이라는 급진적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절대주의의 기반을 흔들었다.
상대주의의 대두와 철학적 반향
진리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는 관점은 20세기 후반 이후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문화 인류학, 해석학 등 다양한 사조에서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리처드 로티는 진리를 ‘담론 내에서의 정당화 가능성’으로 이해하며, 절대적 기준 없이 공동체 내에서 진리가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진리를 권력 구조와 언어 게임의 산물로 보고, 다양한 문화와 담론의 정당한 목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 입장은 진리의 독점과 억압을 경계하고, 타자성의 인정과 다원주의로 이어지는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면 어떤 판단 기준도 성립하기 어렵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진리가 완전히 상대적이라면 거짓말과 진실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문제에 직면한다.
상보성과 실용주의 - 새로운 진리 개념의 가능성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시도로서 실용주의적 진리관이나 해석학적 접근이 제안되고 있다. 찰스 퍼스와 윌리엄 제임스는 진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행위의 결과로 검증되는 것’, 즉 경험적 유용성을 기준으로 판단되는 것으로 보았다. 가다머는 해석과 이해의 과정 속에서 진리가 생성되며, 대화적 상황에서 진리란 ‘이해의 지평’이 융합되는 순간에 드러난다고 보았다. 이처럼 현대 철학은 진리를 단일한 실체로 보거나 무한히 분산된 관점으로 보는 데서 벗어나, 맥락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공동체적 합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형성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진리는 더 이상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며 참여하는 과정 속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접근은 절대주의의 경직성과 상대주의의 허무주의를 모두 피하면서, 실천과 책임을 동반하는 진리 이해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