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는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인간 본성을 '이성적 동물'로 보았던 전통적 철학과는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그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비판하며, 인간은 단순히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라 욕망하는 존재라고 본다. 여기서 욕망은 단순한 충동이나 감정이 아닌, 존재 그 자체를 유지하려는 능동적 에너지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인간의 정념, 자유, 도덕을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게 만들며, 우리가 타자 및 세계와 맺는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시킨다. 이 글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욕망의 본질과 그것이 인간의 존재와 윤리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를 탐색한다.
욕망은 존재를 지속시키는 힘이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욕망(conatus)은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본질적 노력이다. 이는 단순한 본능이나 이기심이 아니라, 자연 전체의 법칙으로 이해되며,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존하고자 하며,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 노력은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우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예컨대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생존을 위한 신호일 뿐 아니라, 존재의 지속을 위한 필연적인 표현이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욕망을 통해 인간의 행위, 감정, 사고를 해명하고자 하며, 그 어떤 초월적 가치보다도 욕망 자체를 인간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정념과 이성의 관계는 대립이 아닌 조화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중요한 지점은 감정, 즉 정념에 대한 재해석이다. 전통적으로 정념은 이성의 방해물로 여겨졌지만, 스피노자는 정념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며, 우리가 정념을 이해하고 그것의 원인을 알게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는 자유를 감정의 억제가 아니라, 이해를 통한 주체적 전환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분노, 질투, 슬픔 등의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원인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로부터 어떤 행위가 유발되는지를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성은 정념을 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념을 통해 더욱 완전한 자기이해로 나아가는 통로다.
윤리란 도덕 명령이 아니라 존재의 논리이다
스피노자는 도덕적 규범이 하늘에서 떨어진 명령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논리라고 본다. 그는 선과 악을 절대적 개념으로 보지 않으며, 선은 인간의 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이고, 악은 그것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관점은 도덕을 상대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근거한 윤리 체계를 구축하려는 철학적 노력이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며, 그 욕망을 보다 풍요롭고 적극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 자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방종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율성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인간의 주체성, 자기이해, 자유에 대한 성찰에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