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는 철학의 전통적 개념인 동일성과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사상가로 평가된다. 그는 '차이'와 '반복'이라는 개념을 통해 고정된 존재론에서 벗어나 유동적인 사유를 전개하며, 사유 자체를 창조적 행위로 재정의했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철학은 개념을 창안하는 행위이며, 이 개념들은 단지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고 실천을 이끈다. 이 글은 들뢰즈의 철학 중 핵심 개념인 차이와 반복을 중심으로, 그의 사유가 기존 철학의 틀을 어떻게 전복하는지, 그리고 이 사유가 현대 예술과 사회, 정치, 심리학에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를 조망한다. 나아가 들뢰즈 철학이 제시하는 비판적이고 역동적인 사유의 가능성을 성찰함으로써, 독자 스스로가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마주할 수 있는 길을 탐색해본다.
차이는 반복을 통해 존재를 구성한다
들뢰즈는 전통 형이상학이 ‘같음’ 혹은 ‘정체성’을 중심으로 사유되어 왔다고 본다. 플라톤 이후의 철학은 이상적인 형상, 동일한 것의 반복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여 차이를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해 왔으며, 반복은 단지 동일한 것의 복제나 모방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들뢰즈는 이러한 사유 방식을 전복한다. 그는 반복이 결코 동일한 것의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며, 오히려 매 순간 새로운 차이를 발생시키는 창조적 운동이라고 본다. 즉, 반복은 차이를 통해 생성되고, 차이는 반복을 통해 현실 속에 출현한다. 여기서 '차이'는 단순한 이질성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며 사유의 동력이다. 예컨대, 한 음악의 반복되는 리듬조차도 완전히 동일하지 않으며, 시간과 맥락 속에서 늘 변주된다. 따라서 반복이란 차이를 생산하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존재는 정체성과 통일성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정체성과 고정된 자아에 대한 해체
들뢰즈의 철학은 고정된 자아나 본질이라는 개념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가한다. 그는 주체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분산된 흐름’으로 간주한다. 주체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차이와 반복의 교차점에서 형성되는 사건이다. 이러한 관점은 개인의 정체성이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구성된다는 비판적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들뢰즈는 ‘되기(becoming)’라는 개념을 통해 존재가 항상 과정 속에 있으며, 도달해야 할 완성된 상태가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되기-동물’, ‘되기-여성’, ‘되기-다수자’ 등으로 끊임없이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경계를 해체해 나간다. 이는 근대적 주체 개념을 해체하고, 타자성과 유동성의 철학을 가능하게 한다. 이로써 들뢰즈는 존재론을 정태적인 개념에서 역동적 흐름의 사유로 전환시킨다.
차이의 철학은 예술과 정치적 실천을 자극한다
들뢰즈 철학의 실천적 함의는 예술과 정치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예술을 기존의 감각 체계를 교란하고 새로운 지각을 가능케 하는 장치로 이해한다. 회화,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예술 장르는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며, 반복을 통해 예기치 않은 감각을 생성한다. 특히 영화 이론에서 들뢰즈는 ‘시간 이미지’와 ‘운동 이미지’ 개념을 통해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관객이 사유하도록 만드는 영화적 구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치적으로도 들뢰즈는 권력의 중심화에 반대하고, ‘소수자 정치’ 혹은 ‘다수성을 위한 철학’을 제안한다. 이는 억압된 주체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정체성을 해체하며, 기존 체계의 경계를 넘는 실천을 가능하게 한다. 들뢰즈의 철학은 단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적 실험과 사회적 저항, 그리고 비판적 창조성의 원천으로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