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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 계몽이 낳은 야만성의 역설

by simplelifehub 2025. 9. 2.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서구 문명이 자랑해온 계몽 이성이 오히려 비합리성과 폭력으로 귀결되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이들은 계몽이 인간 해방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와 통제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보았다. 특히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대에서, 인간이 어떻게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는지를 묻는다. 본 글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제기한 계몽 이성의 자기파괴적 구조를 중심으로, 그들이 주장한 문화 산업 비판과 이성 회복의 가능성을 함께 조명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기술과 정보가 넘치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윤리적·철학적 성찰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고찰해본다.

계몽은 어둠을 몰아내지 못했다

18세기 이후 서구는 계몽주의의 기치 아래 인간 이성과 과학을 통해 무지와 미신을 극복하려 했다. 그러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이 본래 추구하던 해방과는 반대로, 인간을 수단화하고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여기는 이성으로 변질되었다고 본다. 이들은 고대 신화를 단지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이미 인간이 세계를 동일자로 환원하려는 시도로 보았고, 계몽 역시 이런 동일화 충동의 연장이라 주장했다. 즉, 계몽은 미신을 타파했지만 그 방식은 동일한 폭력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결국 나치즘이나 전체주의처럼 합리성의 이름 아래 자행된 비이성의 극단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계몽은 처음부터 야만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그 내적 모순이 역사의 비극으로 나타났다는 통찰은 기존의 진보 담론에 깊은 반성을 요구한다.

문화 산업은 새로운 형태의 억압이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두 저자는 단순히 철학적 사유에 머물지 않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 현상까지 비판의 대상을 넓힌다. 특히 영화, 라디오, 대중음악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 산업’은 대중에게 획일적인 감정과 사고를 주입하며, 자율적 비판 능력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문화가 더 이상 자율적인 예술이 아니라, 산업 논리에 종속된 상품이 되었다고 보며, 이는 계몽이 낳은 또 다른 야만의 형태라 주장한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소비하고 즐기지만, 실상은 구조적으로 조작된 환상을 반복 소비할 뿐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주체성은 점점 약화된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비판적 이성이 위축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계몽 이성의 실패가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임을 경고한다.

진정한 이성은 반성을 통해 회복된다

그렇다면 계몽은 완전히 실패한 것일까?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이성 자체를 폐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적 이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이성, 즉 ‘반성적 이성’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반성적 이성이란 수단과 결과만을 계산하는 이성이 아니라, 자신의 전제와 한계를 성찰하고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윤리적 이성이다. 두 철학자는 계몽이 다시 야만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인간이 자신의 이성 사용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철학자의 사명이 아니라, 민주 시민 모두에게 요구되는 태도다. 결국 『계몽의 변증법』은 계몽 자체를 부정하려는 책이 아니라, 계몽의 자가당착을 드러냄으로써 더 깊고 넓은 의미에서의 인간 해방 가능성을 열고자 하는 비판 철학의 결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