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적 이성이란 수단과 목적의 관계에서 수단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고방식으로, 현대 사회의 합리성과 기술 중심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아도르노는 이 도구적 이성이 인간 해방보다는 지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글에서는 아도르노의 비판 이론을 통해 도구적 이성이 어떻게 현대 사회의 억압적 구조를 정당화하고 유지시키는지를 분석하고, 철학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이성의 전도 - 계몽이 지배로 전락하는 과정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이성의 본래 목적이 인간의 해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도구적 이성으로 전도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계몽은 자연의 신비를 해명하고 인간 중심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술적 계산과 효율성의 논리로 환원되었다. 이러한 이성은 더 이상 목적에 대한 성찰 없이 수단의 정당화만을 반복하며, 인간 삶의 전 영역을 획일화된 틀로 재단하게 된다. 아도르노는 이를 ‘신화의 귀환’이라 표현하며, 이성이 지배와 동일시되는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결국 도구적 이성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사회 체제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문화 산업의 기만 - 비판적 사유의 상실
아도르노는 대중문화가 자율적 예술의 기능을 상실하고,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 도구로 변질되었다고 보았다. 영화, 음악,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는 다양한 형식을 통해 자율적 사고를 자극하기보다는 정형화된 감성과 수동성을 주입한다. 문화 산업은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표현을 동일한 틀 안에 가두어 소비만을 유도한다. 이는 도구적 이성이 예술의 영역에까지 침투한 사례이며, 인간의 비판적 사유를 차단하는 또 하나의 지배 방식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정보와 콘텐츠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 속에서 사유의 깊이와 다양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현실을 경고하며, 진정한 예술과 철학은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판 이성과 해방의 가능성
아도르노는 도구적 이성을 무력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정적 변증법’을 제시했다. 이는 기존의 이론 체계를 전복하고, 사물의 본질을 고정된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태도에 저항하는 사고 방식이다. 그는 철학이 명확한 해답을 제공하기보다, 문제를 드러내고 질문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변혁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비판 이성은 이러한 철학적 태도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단순히 ‘비판하기 위한 비판’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억압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려는 윤리적 의지다. 아도르노에게 있어 해방은 유토피아적인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불의와 모순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실천 속에 존재한다. 이는 철학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이며, 현대 사회에서 이성이 다시 회복되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