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는 감정을 단순히 인간의 나약함이나 수동적 반응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감정을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표현이자,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에티카』를 통해 그는 감정을 엄격한 기하학적 방식으로 분석하며, 우리가 감정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서는 스피노자의 감정 이론을 중심으로,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 개념이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감정은 이성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거부하며, 인간의 마음과 몸은 실체의 두 속성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감정 역시 이성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필연적인 구성 요소다. 그는 감정을 ‘능동적 정동’과 ‘수동적 정동’으로 구분하였는데, 후자는 외부의 원인에 의해 형성되고 우리를 제약하지만, 전자는 우리의 본성을 더욱 뚜렷하게 표현하며 자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 구분은 단순히 감정을 억제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더 높은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감정을 이성으로 교정함으로써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에 머무르지 않고, 능동적 삶의 주체로 나아갈 수 있다.
정서의 기하학 - 『에티카』에 담긴 논리적 감정 분석
스피노자는 감정을 분석할 때 감각이나 직관에 기대지 않고, 수학적인 엄밀함을 도입하였다. 『에티카』는 공리와 정의, 정리를 바탕으로 감정을 하나의 필연적인 논리 구조로 이해한다. 이를 통해 그는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 희망, 기쁨, 슬픔 등의 감정들이 어떻게 외부의 원인과 내부의 본성에 따라 발생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분석은 감정을 통제하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고 구성하는 체계 안으로 인간 스스로를 끌어들이는 시도다. 감정을 수치심이나 결함으로 보는 전통적 도덕 철학과 달리, 스피노자의 철학은 감정이 자유를 억누르는 족쇄가 아니라, 자유를 향한 안내자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유란 감정의 극복이 아닌 통찰을 통한 자기 실현이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유는 고전적 의미의 ‘자유 의지’와는 다르다. 그는 인간이 완전한 자유를 가질 수는 없지만, 자연의 필연성 안에서 감정의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보다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의 원인을 파악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상태다. 즉, 자유란 통제를 통해 얻는 억제의 상태가 아니라, 인식을 통한 자기 실현의 상태이다. 오늘날 감정 노동, 감정 관리, 심리적 피로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스피노자의 감정 이론은 인간의 내면을 억압하기보다, 그것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사유의 도구로서 다시금 조명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