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되며,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신앙, 선택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동시에 불안과 절망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의 철학은 관념의 체계를 구축하려는 전통 철학과 달리, 개인의 실존적인 고민과 내면의 고통을 직시하며, 철학이란 결국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신념에 기반한다. 본 글에서는 키에르케고르 철학의 핵심 주제인 실존적 불안, 선택과 책임, 그리고 신 앞의 단독자로서의 인간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조명한다.
실존적 불안은 자유의 그림자이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불안은 단순한 심리적 감정이 아니라 실존적 조건이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 앞에 놓인 존재이며,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를 선택해야 하는 부담을 짊어진다. 이때 나타나는 감정이 바로 불안이다. 그는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자유가 인간에게 열려 있는 수많은 가능성과 동시에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혼란과 두려움을 느낀다. 이는 신이나 사회가 명확한 길을 제시해주지 않는 상황, 즉 현대적 개인이 겪는 존재론적 문제를 깊이 있게 드러낸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불안을 억제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비로소 진정한 실존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보았다. 불안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로다.
선택은 존재를 구성하는 근원적 행위이다
키에르케고르 철학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은 선택을 통해 형성된다. 인간은 고정된 본질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는 선택과 결단을 통해 자아를 만들어 나가는 주체이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미적 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로 구분한다. 미적 단계는 쾌락과 회피 속에서 살아가는 삶, 윤리적 단계는 책임과 도덕을 수용하는 삶, 그리고 종교적 단계는 신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투명하게 드러내는 신앙의 삶이다. 이 모든 단계는 선택의 결과이며, 어떤 길을 걷든지 그에 따른 책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선택의 고통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 하며, 타인의 기대나 사회의 규범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은 진정한 실존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그는 특히 “자신 자신이 되기”라는 말을 강조하며, 인간은 자기 존재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자기 자신의 삶을 직접 선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처럼 그의 철학은 인간의 주체성과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며, 나아가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행위 자체에 철학적 무게를 부여한다.
신 앞의 단독자라는 실존의 완성
키에르케고르 철학의 종착점은 결국 종교적 실존이다. 그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상태를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라 표현했다. 이는 군중의 시선이나 사회적 규범이 아닌, 신과의 내밀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정립하는 실존의 형태이다. 그는 인간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의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약의 결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아브라함의 이삭 제물 사건을 통해 이를 설명하는데, 이는 윤리적 판단을 넘어서 신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믿음의 본질을 드러낸다. 키에르케고르는 이와 같은 신앙의 도약을 통해 인간은 절망을 극복하고 진정한 실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철학은 개인이 내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신의 부름에 응답하며 자기 존재를 온전히 수용하는 데에 철학의 궁극적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그는 철학이 인간의 실제적 삶과 분리된 이론적 체계가 아니라, 실존적 진실을 다루는 살아 있는 사유임을 증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