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옳고 그름의 문제는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을 사로잡아온 주제이며, 그 가운데 G. E. 무어는 ‘좋음(good)’이라는 개념을 철저히 해부하며 도덕 철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20세기 초 『윤리학 원론(Principia Ethica)』을 통해 도덕 개념에 대한 기존의 자연주의적 설명을 비판하고, 도덕 판단은 경험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해는 이후 윤리학에서 직관주의(Intuitionism)의 기초가 되었으며, 도덕 개념을 설명하는 데 있어 언어와 개념 분석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철학적으로 정교하게 정립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본 글에서는 무어의 ‘자연주의적 오류’, ‘좋음의 정의 불가능성’, 그리고 ‘직관에 의한 도덕 판단’이라는 세 가지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그의 윤리학적 사유를 고찰해 본다.
‘좋음’은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다
무어는 윤리학의 핵심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좋음’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려는 시도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공리주의, 진화론적 윤리학, 심리학적 해석이 모두 ‘좋음’을 쾌락이나 진화, 혹은 인간 욕구의 충족과 같은 자연적 속성으로 환원시키려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무어는 이를 철저히 비판하며, 이러한 시도가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좋음’을 어떤 관찰 가능한 성질로 정의하려 할 때 생기는 논리적 실수로, 그는 ‘좋음’이 마치 ‘노랑’처럼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단순 개념(simple notion)이라고 본다. 즉, “X는 쾌락을 준다. 따라서 X는 좋다”라는 명제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 구조를 통해 그는 윤리학이 과학이나 심리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철학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주의적 오류란 무엇인가
무어의 가장 유명한 철학적 공헌 중 하나는 바로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개념이다. 이는 ‘좋음’을 어떤 관찰 가능한 사실이나 감정 상태로 정의하려는 모든 시도를 비판하는 개념이다. 그는 어떤 사람이 “행복은 좋음이다”라고 주장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지만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인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좋음’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사실적 설명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된 판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무어는 이를 통해 윤리학이 단순히 인간 행위의 결과나 감정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더 깊은 논리적 성찰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윤리학은 과학처럼 데이터로 증명하는 학문이 아니며, 우리가 어떤 행위를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그 자체로 정당화되기 어렵고, 직관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로 독자적인 체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관주의 윤리학의 역할과 한계
무어는 도덕 판단이 결국 직관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즉, 어떤 것이 옳거나 좋은지를 우리는 직관적으로 안다고 주장하며, 이를 ‘도덕 직관(moral intuition)’이라 부른다. 그는 우리가 경험이나 실험을 통해 도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통해 판단을 내린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곧 비판에도 직면한다. 직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논증 불가능하며, 도덕적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어의 철학이 가지는 중요한 시사점은, 도덕 판단이라는 것이 단순한 논리적 귀결이나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의미의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그는 철학이 도덕의 기초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윤리적 언어의 정확성을 되돌아보게 해야 하며, 철학자의 임무는 이런 개념적 명료화를 통해 도덕적 사고를 정교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