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는 20세기 후반 철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윤리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존재론 중심의 전통 철학에 반기를 들고 ‘타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중심으로 철학을 재구성하려 했다. 그는 특히 전통적인 주체 중심 사유가 간과했던 ‘타인의 얼굴’에 주목하며, 우리가 철학을 통해 성찰해야 할 근원적인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타자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사유는 윤리학을 존재론에 우선하는 학문으로 재정립하고, 인간의 주체성을 책임성과 타자 지향성 속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레비나스의 철학은 전쟁과 폭력의 시대 속에서 윤리적 회복 가능성을 탐색하며, 고통과 타인의 절대적 이질성 앞에 선 인간의 본질을 통찰한다.
타인의 얼굴은 나를 향한 절대적 요청이다
레비나스는 인간 관계의 근본을 ‘타인의 얼굴’에서 출발한다. 타인의 얼굴은 단순한 외형이나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나를 향해 “살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윤리적 호소이자 명령이다. 그는 얼굴을 통해 타자는 나에게 다가오며, 나의 자아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는 타자가 나의 이해와 인식 안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은 나에게 동일화될 수 없는 존재로서, 나의 자유를 제한하며 동시에 나에게 윤리적 책임을 부여한다. 이때 ‘자아’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요청에 먼저 응답해야 하는 존재로서 구성된다. 이러한 책임은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조건이자 존재의 구조이다. 즉, 타인을 마주한 순간 인간은 이미 윤리적인 관계 속에 있으며, 이 관계는 나의 의지나 판단 이전에 선행하는 ‘선(先)’의 윤리이다. 레비나스는 이를 통해 서구 철학이 놓쳤던 윤리의 근원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고통받는 타자는 존재의 본질을 드러낸다
레비나스에게 있어 고통은 철학적으로 가장 심오한 문제이자, 타자성과 윤리의 출발점이다. 그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당혹감이야말로 철학이 다뤄야 할 가장 본질적인 정서라고 말한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체험할 수 없지만, 바로 그 ‘이해 불가능함’이 타자의 독립성과 존엄성을 보장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침묵하게 되며, 그 침묵 속에서 나의 무력함과 책임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때 책임은 단지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며, 고통을 감지하고 외면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윤리적 응답이 된다. 레비나스는 고통받는 타자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새롭게 드러낸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제거하거나 치유할 수 없을지라도, 그 곁에 머무는 존재로서 의미를 지닌다. 이는 돌봄과 관심, 연대와 같은 윤리적 행위들이 철학적 사유의 핵심이 되어야 함을 시사하며, 타자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윤리는 존재보다 앞선다
전통 철학은 존재론을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탐구로 여겨왔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존재에 앞서 윤리가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윤리학을 철학의 ‘제1철학’으로 세운다. 존재론은 항상 동일성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며, 타자를 나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윤리는 타자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 즉 이질적이며 나의 사유를 넘는 존재라는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이질성과 차이의 인정을 윤리의 본질로 보았으며, 존재가 스스로의 완결성 안에 머무르지 않고 타자를 향해 열릴 때 비로소 윤리적 주체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타자의 요청에 응답하는 책임적 존재이며, 그 응답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철학을 통해,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현대 세계에서 윤리가 회복되어야 할 근본적인 가치를 되살리고자 했다. 그의 사유는 단지 이론적인 논변을 넘어, 인간 삶의 구체적인 고통과 타자성과 마주하는 방식에서 철학의 윤리적 지평을 넓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