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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살로 느끼다 - 메를로퐁티의 몸 철학과 존재의 감각

by simplelifehub 2025. 8. 26.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인간 존재를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이 아닌, ‘살’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이 글은 그가 말하는 몸의 현상학적 의미와 감각을 통한 세계 인식의 과정을 중심으로,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몸은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세계에 열려 있는 문이다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전통적인 데카르트식 이원론—즉 정신과 몸을 분리하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인간의 몸을 단순한 물리적 기계나 감각의 수동적 수용체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몸은 세계에 대해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의미를 구성하며, 인간의 주체성과 세계 경험의 토대를 제공하는 실존적 장(場)이다. 그는 몸을 통해 세계가 지각되며, 인간은 몸이라는 통로를 통해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판단하며, 몸을 통해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메를로퐁티에게 있어 몸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내가 곧 몸이며, 몸이 곧 나다'라는 존재론적 선언이다. 그는 이처럼 몸을 주체성과 인식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며, 고립된 자아에서 벗어나 세계 속에서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제시한다.

‘살’이라는 개념으로 드러나는 인간과 세계의 얽힘

메를로퐁티가 후기 사유에서 제안한 개념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살(la chair)’이다. 이는 흔히 말하는 피부나 살점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세계가 만나는 감각적이고 존재론적인 교차점이다. 살은 인간의 몸과 세계가 서로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응하며 얽혀 있는 구조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내가 벽을 손으로 만질 때 나는 단순히 ‘만지는 자’가 아니라 동시에 ‘만져지는 자’이기도 하다. 이중적이고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몸은 수동적 객체이면서도 능동적인 주체가 된다.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몸의 구조를 통해 인간과 세계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투과하고 교차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살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상호 침투성과 얽힘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용어로, 메를로퐁티는 인간 존재를 고립된 정신이 아닌, 세계와 얽힌 ‘살의 존재’로 규정한다. 이 개념은 결국 우리가 세상과 맺는 모든 관계가 감각적, 신체적 차원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지각은 삶의 시작점이며, 철학은 몸에서 출발한다

메를로퐁티는 철학의 출발점을 이성적 추론이나 형이상학적 전제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지각(perception)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경험을 철학의 기초로 삼는다. 지각은 단지 시각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단순히 사물을 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메를로퐁티는 그 ‘봄’의 행위조차 몸의 움직임, 감각의 흐름, 세계와의 교감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몸의 균형, 촉감, 움직임 속에서 환경과 소통하며 존재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철학이란 삶의 현장 속, 몸의 감각과 움직임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학이 너무 추상적이거나 개념적일 때, 그것은 삶과 멀어지고 몸과 세계 사이의 진짜 관계를 놓치게 된다. 메를로퐁티의 지각 철학은 바로 이러한 위험을 경계하며, 인간이 살을 통해 세상에 닿고, 의미를 구성하며, 세계와 함께 살아간다는 진실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는 결국 인간의 철학적 성찰이 몸을 지닌 존재로서의 조건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강력한 선언이며, 철학은 우리 삶의 촉각적인 깊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