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의 정점에 있는 인물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자유로움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신이 인간을 미리 설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과 행위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보았으며, 이로써 인간은 전적으로 자유롭고, 동시에 자신의 삶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 『구토』, 『닫힌 방』 등 철학적·문학적 저작을 통해 실존주의 사유를 문학, 윤리, 정치에까지 확장시켰다. 그는 인간이 본질 없이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서 불안을 경험하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으며, 자신을 꾸준히 창조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철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존엄과 자유에 대한 성찰을 촉진시켰고, 존재론적 문제를 정치적 책임과 연결시키며 실천적 철학의 모델을 제시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명제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다. 이는 인간이 어떤 고정된 본질이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존재한 다음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는 전통 형이상학이 인간을 신의 계획 속에서 이해하거나, 본성이라는 틀 안에 가두어 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 자유는 단지 외부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자유이며, 이로 인해 인간은 불안과 책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한 선택으로 인해 자신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모범을 제시하는 것이며, 그 선택이 가지는 보편적 함의를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기만 없이, 즉 ‘자유롭지 않다’고 변명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존재를 정직하게 창조해나가야 한다는 실존적 윤리를 요구받는다.
불안, 타자, 자기기만은 실존의 조건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으로 ‘불안’을 중요한 요소로 제시한다. 그는 인간이 무한한 자유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을 야기한다고 보았으며, 이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론적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선택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선택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결정해야 한다. 또한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형성되는 자아의 문제를 『존재와 무』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다. 그는 타자의 존재가 나를 대상화하며,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된다’는 긴장 속에서 자아는 끊임없이 타자 앞에 자신을 연출하게 된다고 본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바로 ‘자기기만(bad faith)’이며, 이는 자신의 자유를 회피하고 스스로를 고정된 존재로 오인하려는 태도다. 예컨대 웨이터가 마치 웨이터답게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정해진 역할로 고정되어 있다고 믿으며 책임을 회피한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자기기만을 철저히 배격하고, 자신의 자유와 선택에 대해 끝까지 의식적이고 책임 있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존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서 타인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를 단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철학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그 자유가 타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끊임없이 사유했다. 그는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한 도덕적 책임 역시 피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궁극적으로 실존주의는 도덕철학이자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현실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실존주의 철학을 통해 인간의 존엄, 자유, 저항의 가치를 실천적으로 전개하려 했다. 그는 알제리 전쟁, 식민주의, 프랑스의 정치적 위선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철학자가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신념을 보여주었다. 문학적 작품에서는 실존적 고립과 불안, 타자와의 대면을 극적으로 형상화하며, 철학적 개념이 어떻게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사르트르의 철학은 단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내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인간 존재를 윤리적 실천의 중심에 놓는다. 실존주의는 결국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외부에서 찾지 말고, 스스로 창조하라는 요청이며,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자유이자 가장 무거운 의무이기도 하다.